시작은 한 자루 펜이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하고 있다

by 가가책방

펜 세 자루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일주일 사이에요.

무엇에든 의미 두기를 좋아하는 저는 여기에도 어떤 의미를 붙여보기로 합니다.

이 펜 세 자루는 뭐가 될까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2018년 3월? 4월?

아, 이 형편없는 기억력이란.

아마도 2018년입니다.

스케치북 한 권, 펜 한 자루를 받았습니다.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그냥' 받았습니다.

받으며 떠올린 생각이란, '아, 그림 배우고 싶었는데 여기에 열심히 그려봐야지.' 그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하지만, 뭐든 늘 미루기에 부지런한 저는 슬금슬금 미뤘습니다.

미뤘다기보다 시작을 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독서 모임에서 새로운 '놀이'를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문학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그리기를 시작합니다.

'문학 스케치'라고 이름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실제로 하는 건 그야말로 놀이.

읽은 책 속 한 장면 혹은 책을 읽고 난 후 떠올린 대상을 20분~30분 동안 종이 한 장에 그려보는 거였죠.


시작이라고 하면 거기가 시작이었습니다.


시작을 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프로미루어'인 저는 계속 드로잉이나 스케치 연습을 뒤로 미룹니다.

2018년 12월 말까지도요.


그런데 바람이 붑니다.

겨울 바람과 함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거죠.

그때부터 매일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는 시간을 들여 '그리고 싶은 무엇'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걸요.

처음에는 정말 서툴렀습니다.

당연하게도요.

스스로 '못 그렸어', '난 안 되나봐'라는 생각으로 스케치한 종이를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 선한 사람들.

이 좋은 사람들은 부족한 스케치 안에서 '장점'을 찾아서 기운을 북돋워줬습니다.

기분 좋은 행복감을 느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반성한 건, 어떤 책 혹은 작가들을 비판하고 부족한 점들을 들추던 지난 행태였어요.

마침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은 영향도 있었습니다.


네, 시작은 펜 한 자루였습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 주일이 되고, 이 주일이 되고 조금씩 나아졌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걸 이제는 확신합니다.


저는 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네, 겸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만큼 몹시도 좋아합니다.

지금의 책을 좋아하는 마음 역시, 읽으며 기쁨을 느끼게 해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됐겠죠.


시작이기에 작을 수밖에 없음, 아무 것도 없다가 불쑥 생겨난 하나가 때로는 전부임을.


펜 세 자루를 받았습니다.

책 한 권이 지금 제 방에 이천 권 가까운 책이 됐고,

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이 매일 30분씩 무엇이든 그려보는 작은 습관이자 취미가 됐다면,

펜 세 자루는 무엇이 될지 궁금합니다.


2019년에는 더 많이 쓰라는,

더 많이 쓰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프로미루어인 저는 2019년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뒤로 미루게 될테죠.

하지만 미루고 있다고 해서 하지 않겠다거나,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주세요.

어떤 일은, 어떤 사람들은 미루는 동안 규모와 체계를 세우고, 구체화 하기도 하거든요.


책이 재밌어 읽었고,

스케치가 재밌어 계속하고 있으며,

쓰는 게 재밌어 꾸준히 씁니다.


2019년에도 부지런히 미루어 가며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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