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는 이렇게 해보기.

그냥 나지막히 되뇌는 다짐

by 가가책방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2018년을 정리하는 사람들, 2019년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쯤 감탄하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계획하기는 망설여지더군요.


잘 한 건지, 잘못 한 건지, 잘할 수 있었는지, 또 뭘 계획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을 들여 쓰고, 목소리를 낸 일들에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그 시간과 목소리를 다른 데에 썼다면 생겼을지 모를 의미보다 큰가?

없다면 거기에 들인 시간과 기력은 다만 무자비한 낭비로 흩어져 버리는 건가?

아마 매년 반복해왔을 이 물음을 내년 이맘 때에도 던지고 있어도 되는가?


의미가 큰가 작은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보는 건 지금까지 한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대신 넓은 의미로는 계획, 다르게는 다짐한 걸 적는데 시간을 써야겠다.


2018년 12월 말에서 2019년 1월 초까지 읽은 책이 몇 권 있다. 그 중 하나가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독서 모임에서도 몇 번인가 언급했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의 완성도, 그 노력은 경외하지만 그 쓰는 방식이나 방향에는 끌리지 않았다.

비판하기보다 좋은 부분을 가진 작품들을 발견하는 데 힘과 시간을 쏟겠다는 작가의 마음가짐에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러나 책임 있는 비판자의 역할, 그 역할로 달성할 수 있을 인식의 개선 혹은 방향의 전환 기회를 외면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끝까지 따라붙었던 탓이다.

작가의 의지에 결국 항복했음을 밝혀둔다. 작가가 지면을 어디에 쓰건, 누구를 비판하거나 장점을 발견하는데 집중하건, 그의 시간은 그가 쓰고 싶은 데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오만함을 외면해 왔다. 힘이 있는 자가 칼을 들어 불의를 무찌르는 데 앞장 서야 한다는 생각, 다른 면에서 보면 희생을 강요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을 생각을 올바르고, 정당하고, 틀림이 없다고 믿어왔다.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데 오만보다 더 적당한 단어를 알지 못해 오만이라 적는다.

오만이란 '스스로 그럴만 하다'고 믿는 마음이라 정의한다. 스스로 그럴만 하다고 믿는 오만한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해왔으면서도, 다르지 않은 나를 마주봐야 했다.

나의 펜은 강한 힘이 없지만 '나라도 써야 한다'는 값싼 의무감으로 쓴 글이 적지 않았다. 정치, 사회 이슈에 달려들어 어디를 물어뜯을까 고민하는 척하며 역시 값싼 만족감에 젖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이야기들을 미루면서까지 그래야했는가?


솔직하지 못한 건 오히려 나였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전에도 종종 떠올렸던 생각을 이제는 실천하려고 한다.


첫째로 의무감은 벗어버리자. '꼭 해야만 하는 무엇'은 없다. '필요한 무엇'이거나 '하고 싶은 무엇'을 하기도 시간이 모자란다.

둘째로 조금 느리더라도 많이 쓰기보다 정확히 쓰자. '정확하다'는 건 객관적인 상태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더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완성도를 높여가야 한다.

셋째로 규모와 체계가 있는 읽기로 나아가자. 오랜 습관으로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페이지의 다음 어딘가에 더 좋은 부분, 나은 생각,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충족된 경우는 너무 적었고 어긋난 기대가 남기는 건 날선 비판뿐인 감상이었다.

넷째로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찾자. 내 마음에 쏙 드는 책도 좋다. 생각은 다르지만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책도 좋다. 물론, 함께 읽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도 힘써 해결해 나갈 생각이다.

다섯째로 재밌게 읽자. 재미가 없으면 오래 할 수 없다. 나는 오래오래 재밌는 책들,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길을 걷고 싶다. 걷는 듯 천천히.


책과 사람이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변화가 단순한 물리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화학적 변화에 이르도록, 나는 그 촉매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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