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에서의 1시간
어느 카페에서 본 풍경이다. 조금 자세히는 어느 카페 구석의 한 테이블 이야기다.
그 카페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한 커플의 자리였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걸까, 커플은 떠났고 자리는 남았다. 카페에는 커플 말고도 다섯 명이 더 있었다. 넷은 일행이었는데 그들은 손님은 아니었다. 그들이 들어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넷 중 누구도 메뉴를 주문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신기하다. 요즘에도 저렇게 태연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통화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되면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쉬다 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놀랍기도 했다. 혹시 건물주인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무엇도 주문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발을 벗고 발을 마사지 한다거나 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데, 그 당당함이 건물주 못지 않은 건 분명했다. 더 신기한 건 매장 직원들의 반응, 태도였다. 그들은 마치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듯 움직였다. 없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완전한 무시.
이전에 큰 일을 치렀을 수도 있겠다. 흔히 뉴스에서 듣는 진상, 갑질이 여기라고 없었을까.
커플이 떠난 자리에 남자 둘이 앉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주하고서는. 둘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호칭으로는 실장과 직원이었다. 처음 하는 독대였고, 용건은 해고였다. 조금 더 정확히는 입사 8일만의 해고였다. 해고 이유는 업무 미숙이었다. 실장은 직원의 이력서 상의 경력 등을 보고 기대가 컸다고 했다. 자신을 대신해 업무를 지휘하고, 책임있게 효율적으로 처리해주기를 기대했다고 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기대보다 터무니 없이 형편 없는 결과물에 실망이 컸다고 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기대했지만 기대에 비해 업무 결과물이 지나치게 형편 없었기에 해고할 수밖에 없다라는.
직원은 특별히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부정하지 않았다는 건 자신의 업무 미숙을 인정했다는 뜻이고, 긍정하지 않았다는 건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고 의외로 당당히 말했다는 의미다. 이야기가 일단락 된 후에는 오히려 자신도 화가 났다고 했다. 안 그래도 자기 업무 능력의 부족을 실감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 업무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 외에 힘쓴 일들이 있었는데도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데 '뿔이 났다'고 말이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퇴근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듭 자기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는 지금 '멈춰 있다'고도 했다. 어떤 업무였는지 모르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업무 능력을 실감할 때의 답답함은 안다. 그러나 그렇게 당당히 말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그 당당함에 놀란 이유다.
어떤 식으로 노동 계약을 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실장은 업무 일 8일을 기준으로 130만원을 정산 금액으로 제시했다. 의외였다. 도대체 어떤 일을 했던 걸까? 급여가 정해진 후에야 실장은 직원에게 주민등록증 사본을 요청했다. 실업 급여를 받는 중인지, 노무비 처리를 할지 말지를 그제서 정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도 놀랐다. 사무실 출입 카드가 반납됐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회사 컴퓨터에 꽂아둔 자신의 USB를 찾아가야겠다고 했다. 둘은 일어났고, 이제 직원이 아니게 된 직원은 자신의 잔과 실장의 잔을 모두 들고 가면서 실장에게 테이크아웃 잔에 옮겨 달라고 부탁할까를 물었다. 실장은 차에도 남은 커피가 있다고 했다. 남남이 된 두 사람의 첫 대화가 기이하다고 느꼈다. 둘은 나갔고 테이블은 다시 비었고 커피 두 잔을 담아 온 쟁반만 자리에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가고 5분이나 됐을까? 두 남자가 떠난 자리에 두 여자가 와서 앉았다. 기이한 우연이랄까, 두 사람도 고용인과 피고용인이었다. 다르면서 같은 건 두 사람이 주문한 건 따뜻한 커피가 아니라 시원한 자몽 쥬스였다는 거다. 먼저 두 남자 때와 마찬가지로 고용인 쪽에서 음료를 가져와서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처음 들린 말은 "업무가 맞지 않는 듯 하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해고였다. 다른 건 8일이 아니라 3개월째라는 기간뿐.
이번 두 사람의 경우에는 고용인 쪽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했고 피고용인은 드물게 던져지는 물음에 답할 뿐이었다. 이번에도 피고용인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업무나 근무 기간동안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어려움을 토로하지도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뭔가 좀 전에 두 사람과 대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가 다른 걸까. 이 네 사람.
피고용인 두 사람 모두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듯 했다. 오늘, 처음으로 이야기가 나왔고 바로 직장을 잃은 거다. 둘다 얼굴 빛이 어두웠다. 그러고보니 여자는 슬퍼보였다. 아쉬움도 남은 듯 했다. 남자는 슬픔이나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적어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 둘도 떠났다. 이번에는 고용인이 쟁반과 빈컵을 챙겨서 나갔다. 먼저 두 남자가 두고 간 쟁반까지 챙겨서 갔다. 오히려 화기애애해진 느낌이었다.
한 시간.
나는 다만 관찰하고, 애쓰지 않아도 들리는 만큼만을 들으며 네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관찰과 상상의 결과 떠올린 이미지를 통해 느끼고 판단했다. 비극이었다. 네 사람의 이야기는 네 사람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그 사이에 먼저 카페에 앉아 있다 사라졌던 네 사람 중에 세 사람이 돌아왔다.
뭔가 나갈 때보다 당당해진 모습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장 덩치가 크고, 덜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은 통화 중이었는데 어떤 금액들을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들린 건 3,400에 성공 보수 2,000. 해서 5,400이라는 말이었다. 중계? 소송? 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대단히 이기적인 인간들이라는 거다.
얼마를 벌었는지, 어떤 사업적 목표를 달성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돌아온 그들은 이번에도 무엇도 주문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는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이를 쑤셨다.
이 한 시간 동안 카페는 누군가에게는 천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어떤 공간, 때로는 어쩌면 '순간의 지옥' 같은 공간은 아니었을까.
춥다.
따뜻한 날이 지나고 오늘은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오늘이 춥기만한 하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낱 관찰자로 세상의 주변을 맴돌 뿐인 나의 지극히 사소한 바람이란 고작 그런 거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