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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26. 2019

죽어버린 꿈은 식어가며 고군분투 한다.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이 소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을까? 

여섯 번? 일곱 번? 그보다 더? 

읽을 때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다른 얼굴로 페이지와 페이지를 오가며 자신이 그렸던 꿈을 보여주곤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다른 이야기와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반대로 점점 더 현실성을 띄어가고, 다양한 모습을 자꾸만 보여주며 말을 걸어오는 듯 느낍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새삼 재발견한 건 불륜을 저지르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 머틀이 품고 있을지 모를 의외의 미덕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속 다른 인물들이 갖지 못한 미덕.

바로,

열정.

그 계기가 무엇이든, 속셈이 어디에 있든 사랑에 몰두해서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는 어떤 의미에서의 순수함을 머틀은 갖고 있던 게 아닐까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머틀은 톰의 돈이라는 속물적 가치에 사로잡혔다가 질투에 눈이 멀어 스스로 죽음으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머틀은 톰의 돈만을 사랑했던 걸까요?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머틀은 톰 이전에도, 이후에도 남편 윌슨 외에 다른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거나 그 비슷한 꿈을 꾼다거나 하는 상상을 해보지도 않았을 인물입니다. 스무 살 무렵에 사랑에 미쳐 결혼했다가 남편이 빈털터리 가난뱅이에 야망이나 비젼조차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지만 이후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기 안에 넘치는 열정을 억누른 채 살아갑니다.

 톰과 만나 열정의 자물쇠가 부서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게 머틀의 삶, 운명은 어떤 부분에서 안나 카레니나와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톰은 한 순간의 불장난을 위해 머틀을 만났을지 몰라도 머틀은 톰과 조금 더 먼 미래, 다른 미래까지 꿈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증거의 하나라고 할까요. 타오르는 거센 불길 같은 머틀의 질투는 단순히 톰의 본부인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니까요. 오히려 머틀은 톰이 약속을 지켜 데이지와 이혼하고 자신과의, 자신의 새로운 삶을 열어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게 아닐까, 그런 미래가 윌슨의 방해로 부서져버릴 위기에 처했다고 느꼈기에 그토록 무모할만큼 간절히 뛰어들었던 게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스스로가 지닌 남다른 미덕으로 '정직'을 꼽습니다. 정직하기 어려웠던 시대,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고 불법으로 부를 쌓던 시대에 닉 캐러웨이는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합니다. 그와 상반되는 거짓의 아이콘인 조던 베이커가 커플로 맺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요.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 조던 베이커가 이별을 고하며 닉에게 건넨 말을 통해 닉의 '정직'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이상, 환상적인 꿈을 품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위험과 위협을 이겨냈던 개츠비와 눈이 멀 정도의 질투에 시달렸던 머틀. 

<위대한 개츠비>에서 죽음을 맞은 두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순수했던 게 아닐까요.


 타인이 가진 것에 의존하려던 머틀은 닉에게는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은 인물로서 잊힌 반면, 가장 가까이서 개츠비의 빛과 어둠 모두를 보고 들으며 그가 기울인 노력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나은 인물로 믿어버렸던 건 아닐지. 


 그런 관점에서 새삼 느낀 것 하나는 <위대한 개츠비>는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머틀이나 불륜의 주역인 톰, 거짓말쟁이에 오만한 조던, 불안한 개츠비보다 안정적인 톰을 선택한 속물의 아이콘 데이지, 그리고 개츠비의 파티를 만끽했으면서 장례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저명 인사와 유력자들.

 그러나 개츠비가 선이 아닌 것처럼 그들 역시 악이 아닌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런지.


 살아 남은 사람들은 흘러가고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리듯 살다 흩어졌지만 꿈을 품고 죽어버린 이들은 여전히 삶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지점과 이유를 일깨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꿈은 죽어버렸을지 몰라도, 그 주변을 맴돌며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그 온기를 완전히 잃지 않으면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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