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운동의 함성, 그들의 숨결을 머금은 길을 걷다

공주시 근대문화 탐방길 1편

by 가가책방

2019년 3월 1일은 1919년 3. 1 운동 그날로 꼭 100년이 되는 의미 깊은 날입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독립 운동과 독립의 의미,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되새기면서 잊혀가는 기억을 바로 세워 봅니다.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를 의결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하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제 자리를 찾아간 느낌입니다.


우연의 일치랄까요, 얼마 전 공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와 마주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시작은 공주 원도심의 높은 곳들에 올라가보자였어요. 공주에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 혹은 여행이나 학교 등의 이유로 공주를 찾은 분들을 위해 지도와 함께 사진 몇 장을 보태어 봅니다.


웅진 시대 백제의 수도이면서 유네스코세계문화 유산을 품은 공주에서 찾은 독립운동의 숨결, 함께 느껴볼까요?

KakaoTalk_20190227_084232717.jpg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출발지는 공주 원도심에 위치한 중동성당 앞입니다.

중동 성당도 찾아볼 만한 곳인데요, 일단은 다음 기회로.

공주에서는 '작은사거리'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무령로의 큰 사거리와 비교해서 말이죠.

(공주 원도심 토막 지식)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시한 경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상당한 오르막과 마주할 수 있으나 꿋꿋이 오르셔야 합니다.

언덕을 오를 때, 처음부터 왼쪽 인도를 이용하시기를 추천해요.

왼쪽이 어느 쪽이냐?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이라는 언덕 위에 위용도 대단한 건물이 있습니다. 그쪽입니다.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언덕을 오르다보면 이런 사진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주시 근대문화탐방길

3.1중앙공원/현 위치에서 230m

중앙공원 안내판.jpg 근대문화탐방길 3.1 중앙공원 안내 표지

230미터라고 하니 굉장히 멀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언덕은 오르라고 있는 법 일단은 마저 올라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 올라갔더니 왼쪽에는 학교 교문이 있고 오른 쪽으로 두 갈래 갈림길이 있을 뿐이더라고요.

이게 뭘까 하고 10초쯤 생각을 하다, 오른 쪽 갈림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두둥.

이렇게 계단과 마주쳤습니다.

중앙공원계단.jpg

"후훗, 계단과 언덕은 오르라고 있는 것이지."

계단 위로 동상과 조각이 눈에 들어온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열 다섯 개의 계단을 올라갔을 때 정면 동상 받침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관순열사상.jpg
유관순상1.jpg
유관순 열사상&3.1중앙공원
유관순 열사상

여전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듯 한 군중에 둘러싸여 왼편, 아마도 공주보다 더 북쪽 어딘가를 바라보듯 한 모습으로 한 손엔 책을 다른 한 손엔 태극기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유관순.jpg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된 게 열여섯 살 때라고 하더군요.

열여섯.

그는 어떤 마음으로, 무슨 간절함으로 모든 걸 던지고 독립을 부르짖었을까요.

대단하다는 탄복하는 마음과 부끄러움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눈부신 뒷모습을 새기고 돌아섰죠.


중앙공원안내.jpg
유관순중앙공원.jpg

발견 순서가 바뀌었는데, 현재 3.1중앙공원으로 명명된 이 공간은 본래는 앵산공원으로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전해진대요.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지 못하지만 '앵산'이라는 이름에서 벚꽃과 관련되어 이름 지어졌을 거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봄이 되어 꽃이 피면 그때 한 번 더 올라와 봐야겠어요. 그 풍경이 얼마나 즐길만 했는지 짐작이라도 해보려고요.

중앙공원비석.jpg 4.19 학생혁명 기념비

커다란 동상이나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을 4.19학생혁명 기념비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전망대.jpg

여기부터는 학교 안이에요. 교문을 지나서 교정으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오른 쪽에 커다란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100년은 넘어 보이는 정말 커다란 나무인데요, 어쩌면 이 나무는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역사 속 그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공주 역사 전망대'.

이 곳에서 보이는 공주는 어떤 모습일지, 직접 올라가보지 않을 수 없겠죠?

역사전망대2.jpg
역사전망대3.jpg

역사전망대 위에는 공주에 위치한 주요 공간과 고지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의 근대 모습과 현재가 교차하며 공존하는 공간이었어요.

산을 파헤쳐 도심을 확대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공주 원도심만의 가치랄까요.

현재와 과거에서 느끼는 한 순간의 일체감.

역사전망대4.jpg

공주 원도심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연, 전망대라 이름 붙일만 하네요.

저 큰 건물은 오래 전에 무엇이었을까?

오래된 듯 보이는 저 집은 그 때도 같은 자리에 있던 게 아닐까?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역사 책 속에서만 하는 게 아니겠죠.

영명학당.jpg 영명학당 유관순상

영명학당에도 유관순 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배웠다가 잊어버렸을텐데 유관순 열사는 천안이 고향이었고 영명여학교에서 배우고 이화학당으로 진학했다고 해요. 서울에서 3.1운동을 벌였고, 4월 1일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 됐다고요. 그 자리에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오빠 역시 공주 영명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잡혔다고 합니다.

독립운동비.jpg
영명탑1.jpg

영명학교 한 켠에는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이름을 새긴 비석과 흉상이 있어요.

그리고, 해원비.

해원비.jpg

해원비에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잊지도 않겠지만 용서도 못하리라
꽃다운 청춘 나이 일본군에 끌려가
님들은 지옥 같은 날 당하고 견디셨네

그러니 님들이여 그 원한 놓으시고
이제는 남은 세월 편안히 쉬시옵고
목숨이 다하시는 날 천국 위로 받으소서

2012년 7월 23일
공주시 고등학교 학생연합회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는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편안히 쉬시길.

어린유관순.jpg 유관순과 사에리시 동상

'1905년 샤프 선교사의 부인 사에리시는 현재 영명학교의 전신인 명선여학교를 설립하고 천안에 살던 열한 살 소녀 유관순을 데려와 2년 동안 공부하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였고, 1916년 이화학당으로 서울 유학길을 열어주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1902년 생, 열한 살 유관순.

영명고등학교벽면2.jpg
영명고등학교벽면1.jpg

1919년 4월 1일 공주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공간.

태극기 위에 독립선언서를 설치한 설치 작품입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하며 외웠던 기미독립선언서와 이렇게 다시 마주하다니.


어쩌면 그날, 그들의 외침과 함성, 숨결이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오늘의 우리를 지켜주었던 건 아니었을까.

봄이 움트는 이 계절에, 꽃보다 더 그리운 자유를 위해 소리쳤던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 자유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나란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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