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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l 05. 2019

공간은 어떻게 책방이 되는가 #2

상상은 상상이다

상상했던 그대로 됐느냐고요?

아니요. 

무엇 하나 상상 못 했던 가가C입니다.


처음 책방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 자리에, 이런 과정으로, 지금 모습의 책방이 될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공간은 너무 작았고, 출입구 말고는 틈이 없는 데다 완전한 북향이라 실내 공기 순환이나 환기가 어려운 구조라 차선의 차선의 차선으로 미뤄뒀던 곳이거든요.


 무엇이 될 공간이든 공간을 찾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적당하지 않음' 혹은 '충분하지 못함', 때로는 '부족하거나 넘치는' 문제와 마주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바로 이곳이 내 공간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분들이 있던데, 그저 부럽습니다. 


 몇 가지 돌아보면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1. 천변에 자리하고 있고 예전에는 자전거포였던 단층짜리 공간. 얼핏 보기에 여섯 평은 될까 싶었는데 화장실은 없다고 하는. 응? 네? 돈을 좀 들여서 화장실을 만들면 위치상으로는 괜찮다고 하는 공간. 그런데 결정적 문제가 권리금이었어요. 500이었나? 나중에는 300이었나? 어렵죠. 암요. 

2. 천변에 자리하고 있고 직전까지 분식과 카페를 겸한 영업을 하던 2층 공간. 여기도 넓지는 않아서 1, 2층을 합쳐서 8평은 됐을까요.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새로 만들어야겠지만 일단 화장실은 2층에 있었고 월세도 그럭저럭. 그런데 여기도 권리금이 있더라고요. 700이었나? 후후,, 네? 700이요?!

 그 후로 6개월 가까이 비어있던 공간이 얼마 전 계약되어 새로 공사하고 계시더라고요.

3. 사대부고 앞 상점가 1층 공간. 여기는 애매했던 부분이 실내외 인테리어가 완전히 되어 있었거든요. 보증금은 저렴했고, 월세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권리금이 1,300? 네? 1,300이요? 네?? 그것도 조금 받으시는 거라고요? 네에??? 전면에 철제로 장식한 게 500이요? 아, 허헣. 

4. 여기가 45만 원이라고요? 전체 가요? 으흐흠?? 샷시와 천정, 벽 인테리어를 새로 한 공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30평도 넘어 보여서 좀 큰데? 좀 많이 큰데? 싶은. 중간 규모 서점을 생각한다면 보증금이나 월세, 시설이 적당했을 거예요. 처음으로 권리금도 없었는데 공간을 최소한으로 채운다고 해도 지나치게 컸던. 그때 알았습니다.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그 외에 상권이나 공간 크기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금액의 보증금과 월세를 부른 몇 곳, 매물로 나왔다가 소리 없이 없어진 공간들, 어디 외지인이 카페를 하겠다고 샀다가 인테리어만 끝내고 매입 비용에 인테리어비가 붙어서 건물 값 자체가 올라가버린 공간. 

 

 지금 이 공간을 택하게 된 건, 작은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과 내 손으로 모든 걸 해보자는 욕심이 컸습니다. 다른 곳보다 조건이 월등히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러나 이보다 적당한 실험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공간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다음 공간을 계획해보자는 포부.


 상상은 상상이었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공간은 현실이 되지 않았고, 상상했던 공간이 눈 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었죠.

그래서였습니다. 

상상하기를 그만두고 작고, 허름하고, 환기도 어려울 게 뻔한 공간을 현실로 끌어내린 이유요.


책방이 될 공간을 소개합니다.

시트지로 도배된 유리, 그마저도 깨진 유리
세면대 없이 수도 꼭지 두 개만 덩그라니, 때탄 벽
전기 온수 매트, 철제 의자, 더러운 장판


공간을 만들어보는 건 처음이라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상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하지만 시작하기 위해 꼭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움, 다른 이름은 철거.


 쉬엄쉬엄 하기도 했지만 이후 상당한 시간을 철거에 들이게 됩니다.


 상상은 상상입니다.

상상하기만 하면 현실이 되지 못하고 상상에만 머물죠.

하지만 상상을 완전히 멈출 필요는 없었고, 그만둬서도 안 된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현실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걸 상상하고, 그 안에서 선택하고, 선택 안에서 다시 상상하는 과정.

공간이 책방이 되는 첫 단계가 바로 상상은 상상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었어요.

여러 의미에서 말이죠.


오늘 하고 싶던 말이요?

상상은 상상입니다. 그러나, 
"상상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라고 하죠. 

상상이 공간을 책방으로 만듭니다.


당신이 찾아오는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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