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연애를 못하는 서른네 가지 이유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이 순간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생각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세상에 대한 증명이 아니어도 좋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은 확신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확신이 생길 때까지 생각해야만 한다. 생각이 곧 나고, 생각하는 나가 곧 존재다.”
남자는 가끔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이 말은 남자의 내부에 맹렬한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자신이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생각이 없어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이유는 아무래도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 같았다. 하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남자에게 생각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을 남자가 실제로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전부가 남자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유가 될 것 같다. 남자는 생각이 너무 많으면서 사람들이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생각들도 자주 했다. 언제나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중요한 순간에 생각의 온도차를 느끼고는 했다.
남자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사람들이 남자에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가운데는 남자 역시 생각했으나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적지 않았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그런 생각들은 때로는 이기적이었고, 때로는 극단적이었으며, 때로는 막연했고, 때로는 무의미했다. 남자는 ‘더 나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 종종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때때로 말문이 막히곤 하는 이유란 그것이 자신이 생각해오던 올바른 생각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위해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에게 길을 가며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바쁘다거나 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신호를 지키지 않으며, 길을 가며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행동들은 이해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남자는 실수로 떨어뜨린 종이나 휴지를 다시 줍는 사람을 보면 흐뭇함을 느꼈다. 신호를 꼭꼭 지키는 모습을 보며 뭉클해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조금 멀찍이 떨어져 한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난 후 자리를 옮기는 사람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기도 했다.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내리는 사람을 위해 내렸다가 다시 타는 사람들을 상식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작은 배려들이 배어나는 모습들을 보며 감동하고는 했다. 남자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조금 억울한 것이었다.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남자의 생각은 세상 속 ‘보통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하지만 많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옳은 줄은 알지만 행하지 않는 일도 많았고, 그른 줄 알면서 할 때도 있는 거였다. 언젠가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뭘 할 수 있겠냐?”
아버지의 말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실제로 남자는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해보려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양심의 가책과 거북함이었다. 몸이 조금 더 편했고, 저금 더 간단히 이익을 손에 쥘 수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남자였기에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은 이유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무수히 떠올리며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생각함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생각하는 인간의 괴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을 생각하고 거북하거나 괴로운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덜어내는 편안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고도 많았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통해있다. 그렇기에 생각이 없다는 말은 남자에게는 몹시도 모욕적인 말이었다.
언젠가 남자는 한동안 내려놓음이나 생각 멈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만 읽었던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남자는 그 책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생각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 사람들의 생각 역시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남자를 안심시킨 것만은 분명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남자에게 이렇게 되묻기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이 물음에 대해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반도 듣지 않고서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남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 말의 시작은 대략 이랬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거야. 하나는 지성이고 하나는 양심이지. 굳이 비유하자면 운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성은 눈이야. 앞을 보고 있지. 가야 할 방향을 살피고, 상황을 파악하지. 신호는 빨간색이야, 하지만 지나가는 차는 어디에도 없지. 자신이 갈 곳은 분명해. 예를 들면 왼쪽이지. 눈은 벌써 자신이 나갈 곳을 보고 있어. 하지만 이때 양심이 발이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을 저지하지.
“잠깐만, 지금은 빨간불이거든. 빨간불은 멈춰서라는 의미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지성은 양심의 목소리에 짜증이 났지. 그런 것쯤은 자기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이거든. 양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자, 보라고! 아무도 없어. 지금 지나간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아. 안 그래?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벌써 지성이 열 받았군. 지성의 말처럼 양심은 생각이 없는지도 몰라. 양심은 일종의 무게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쪽이거든. 양심은 저절로 옮겨 가는 거야. 천성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고, 살아오며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작용하기도 하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그건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야. 삶에 이유를 묻는대도 삶은 답을 내놓지 않지. 그저 계속 이어질 뿐이야. 만약 내가 너에게 “왜 그렇게 살아?”하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래? 그 답을 생각해보면,
여기까지였다. 시작만 적는다는 게 말을 끊던 순간까지 적어버리고 말았다. 남자의 설명은 논리적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초에 인간이 지성과 양심의 두 가지로 움직인다는 전제부터가 모호하다. 그러나 삶과 생각이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펼쳐질 것이고, 생각은 삶 속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 감정 등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물음은 대단히 무례하고 실례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오히려 되물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아?”라는 질문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 어려울 것은 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모욕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걸 묻지 말기를 바란다.”
적어도 남자는 그런 의미로 이야기했다. 물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남자의 생각만으로 알 수 없다. 생각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나 자신 안에 머물며 자신만의 것으로 존재하는 공유될 수 없는 고유한 세계였다.
남자가 일부러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생각은 저절로 떠올라서 멈추게 하거나 나아가게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의심하는 것, 믿음이 없는 것, 결핍을 결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머뭇거리는 것, 겁내는 것, 기다리는 것 등의 거의 모든 성격이 남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살면서 남자는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비록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자신에 관한 것만을 생각하기에도 버겁고 벅차서 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에 소홀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연애를 못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내려놓음이 조금 마음에 익으면 그날에는 조금 달라질 지도 모른다. 얼마간의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오히려 흥미진진한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쩌면 내일부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