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미래는 없지만 기록된 기억은 남는다.
사람과 공간은 닮은 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거요.
하지만, 공간과 사람은 닮지 않은 부분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생각해요.
역시 예를 들면 사람은 과거에 연연하기 쉽지만 공간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과거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해 보기로 해요.
이 공간이 책방이 되기 전에 어떤 사람들로 채워졌었는지.
공간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유추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들리고, 주변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모아봅니다.
아카이빙, 작은 아카이빙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공간의 기억은 오직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공간 주변을 생활의 공간으로 삼았던 이들의 삶에만 남아있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흩어지죠.
그런 의미에서 공간의 과거는 미래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간의 과거에는 미래가 없는 거죠.
오직 지금만 사는 공간.
현실에 지극히 충실한 공간을 대신해 공간의 기억을 기록하는 시간, 잠시 머물다 갈게요.
책방을 찾은 분 중에 종종 "예전에 여기는 뭐였어요?"라고 묻는 분이 있어요.
무슨 사무실이었는지, 어떤 용도로 썼던 공간인지 궁금하신 거겠죠.
사실 저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물어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몇 가지 기억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이전, 공주 소재 학교들에 기숙사가 생기기 전까지 공주 원도심은 집집마다 하숙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책방이 된 이 공간은 그전에 생겨났어요. 아마도 40년 혹은 50년은 됐을 거예요.
1. 처음에는 집주인 어르신의 아버지가 가게로 쓰셨던 모양이에요.
정확히 뭘 팔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점방'이라고 표현하는 걸로 봐서는 여러 가지를 취급했던 듯합니다. 학교(공주사대부고)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문구류는 물론 군것질거리도 팔았겠지요. 어쩌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던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 짜장면집이었던 적도 있다고 해요. 영업이 제법 잘 됐는데, 위생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폐업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폐업하긴 했지만 영업을 하던 짜장면집주인들은 비교적 성공해서 떠났다던가요.
그 후, 어느 시점엔가 중간에 벽이 세워져서 공간이 둘로 나뉜 듯해요. 지금은 세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세 칸 면적이 거의 비슷합니다. 5평 정도로요. 그중에 두 칸은 중간 문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칸은 별도의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3. 유추해보면 두 칸을 살림집(아마도 아이가 딸린 집에)으로 세를 주고 한 칸은 하숙이나 원룸으로 월세를 주었던 듯해요. 근거는 중간 문에 붙은 캐릭터 스티커입니다. 벽지를 전부 뜯고 나서 발견한 스티커니까 중간 문을 막지 않았을 때 붙여둔 거라고 추측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죠.
벽지를 뜯으며 대충 세어본 거지만 적어도 6, 7겹. 많으면 10겹은 되어 보이는 벽지가 겹겹이 쌓여있어서 중간 문을 막아 세 칸으로 만든 시점도 15년 이상으로 추측해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길면 20년쯤 전에는 세 칸이 별개의 공간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활을 했겠죠.
4. 마찬가지로 벽지를 바탕으로 알아낸 정보인데 무속인이 머문 흔적이 있습니다. 주변 어르신들께 물어보니 많을 때는 무속인 두 명이 각각 한 칸씩을 사용했다고 해요. 가장 오른쪽 공간은 벽지가 한 겹뿐이었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 새로 들어오던 사람이 벽지를 뜯어내고 새로 도배를 했던 모양입니다.
무속인이 점유하기 전인지 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지나가며 하신 얘기에 따르면 한때 친구가 제가 책방을 만들고 있는 공간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마치 서재처럼 만들어서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아지트처럼 썼다고도 해요. 대학생이었는지, 그 이후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책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다시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5. 누군가와 친구들의 아지트이자 서재.
6. 술을 많이 마시는 부부가 살기도 했다고 해요. 특히 남편은 술에 취하면 다 마신 병을 길에 던져서 깨뜨리는 게 술주정이었다고.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은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하고, 아는 학생들은 골목을 피했으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펑크를 걱정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깨진 샷시 유리가 그 증거라고 하는데, 옆 공간 유리도 시트지에 동그랗게 움푹한 흔적이 남은 걸 보면 밖에서도 던졌던 모양이에요.
7. 가장 최근에는 신문의 중간 보급소로 썼더라고요. 어디 몇 부라고 적힌 A4용지 한 장과 주인 어르신의 얘기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빈 공간에 남아 있던 물건은 세숫대야 하나, 빗자루 하나, 쓰레받기 하나, 대걸레 하나, 철제 의자 하나, 온수매트 하나, 비누 케이스 한 짝, 지역 신문 한 상자 정도였어요.
생활의 흔적이라고 하기도, 흔적을 부정하기도 힘든 애매한 유품들.
8. 광고, 간판집이었던 시기도 있는 듯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 중에 간판, 광고 집이었다고 얘기해주는 분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유리문에 큰 글자로 '광고'라고 쓰여 있던 데다 커다란 간판이 달려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프레임이 남아있는데도요. 미스테리합니다.
이렇게 '거의 확실한 과거'만 적어봐도 여덟 가지가 넘는 이 공간에 지금은 책방이 자리하고 있어요.
몇 년 후, 혹은 십몇 년 후에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며 어떤 얘기를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쯤 되면 공간에는 과거가 남아있지 않겠죠.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하기로 해요.
여기에, 이 공간에, 지금, 책방이 있다고요.
오래오래 이 자리를 지키며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보금자리로 기억될 수 있도록.
이제 조금은 궁금증이 풀리셨을까요?
앞으로 예전에 지금은 책방이된 공간이 예전에는 뭐였냐고 묻는 분이 있으면 링크 하나 보내드려야겠네요.
혹시 기억하고 싶은 공간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기록해 두세요.
경험과 공간의 느낌을 이미지와 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