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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l 24. 2019

공간은 어떻게 책방이 되는가 #5

잘 모릅니다만 일단 벽부터 고쳐봅니다

안녕하세요. 

DIY로 가가책방을 만든 가가C입니다.

다섯 번째 시간, 이번 이야기는 질문으로 시작해볼게요.


#질문 : 공간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답하기 애매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조금 더 좋은 질문으로 바꿔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음, 시선이 시작되는 지점?


 어렵네요. 

책방을 만들어 보기 전에는 답할 생각을 못했던 질문이었어요. 

답해본다고 해도,

"공간은 느낌이지."라거나, 

"색깔?"이라거나,

"조명?" 하는 식으로 답했을 거고요. 


먼저 제 대답을 들려드릴게요. 

제가 공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보는 부분은 '벽'입니다.

가가책방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저는 시선이 마주하는 부분. 바닥과 수직을 이루는 부분을 먼저 보고, 인식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잠깐 시간을 드릴 테니,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보고 오세요.


생각해 보셨나요? 

문을 닫은 평화강(짜장면집)에서 버리는 의자를 가져온 후에 다음 날부터 열심히 철거해서 천정을 남김없이 뜯어냈어요. 입구 앞쪽을 남기려던 계획도 변경을 했는데요.

 다시 평면도를 가져와 볼게요.

왼쪽 1200mm, 그러니까 1.2미터 폭을 남기려다가 마저 철거한 거예요.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요.

하나, 입구 쪽 천정이 여전히 낮다 보니 안쪽을 뜯어서 천정을 높인 효과가 반감됐어요. 

둘, 일관성이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고요.

셋, 출입구 외에 공기가 순환할 통로가 없는데 윗부분이 막혀 있을 때 환기가 더 어려워질 듯했어요.

넷, 천정 합판이 지저분하게 잘렸어요.(이 작업을 할 때 갖고 있던 도구가 절단용으로는 실톱 하나뿐이었거든요)

다섯, 천정 위쪽 작업 공간 확보가 힘들었어요. 전기, 조명 작업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

여섯, 천정에 붙은 스티로폼이 절반은 붙고 절반은 떨어져 있는 데다 페인트 칠도 어설프게 되어 있어서 보기 안 좋았어요.

 일곱, 여덟 이유는 생략.(이것저것 많다는 의미)


옆방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 발견 사건(https://brunch.co.kr/@captaindrop/553) 이후 의외랄까, 놀란 일이 있는데요. 바로 출입구와 방을 분리하는 벽 윗부분이 뚫려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작고 속이 꽉 찬 벽돌과 크고 속 일부분이 비어있는 블록으로 벽을 쌓고, 쌓은 벽을 시멘트 반죽으로 감싸는 작업을 한 건데요, 상부 50센티미터 정도를 띄워둔 상태에 맞춰서 천정 합판을 덧댄 거죠. 

 어쩐지 천정을 뜯어내고 났더니 벽이 흔들리는 듯하더라니 벽을 보강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늘어납니다. 

뚫린 벽을 보강해야 한다는 미션이 새로운 책장을 만드는 자극제가 되어주었죠.


벽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오랜 논의와 조언, 상담을 거쳤어요. 

솔직히 너무 좋은 방법, 멋진 소재, 예쁜 재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하지만 뭔가 덜 끌렸달까요.

그래서 흔히 쓰는 재료를 먼저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핸디 코트라고 하는 이름, 회반죽의 일종으로 기본 마감재 기능을 하는 재료요. 

일단 발라보고, 부족하면 다음에 다른 소재를 더하기로 하고 말이죠.


구매한 핸디 코트는 내장용, 수성, 워셔블 핸디코트였어요. 더 싼 제품도 있었는데 중간 정도 가격 제품을 택했고 처음에 두 개를 주문했다가(18kg) 나중에 한 개(25kg)를 더 주문해서 총 3개를 썼어요. 사실 한 번만 바른다면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데 저는 많이 바른 면은 세 번까지 발라서 사용량이 늘어났어요.


 핸디 코트를 떠서 받칠 판은 뜯어낸 천정 합판과 각목으로 만들었어요. 

첫 번째 DIY 제작 도구인 셈이죠. 여기서 실수를 하나 하는데 핸디 코트를 바를 때 쓰는 흙손은 미장용 흙손이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생긴 실수였어요. 시멘트를 바를 때 쓰는 흙손을 사서 쓴 거죠. 

 나중에 옆집 어르신 댁 페인트 칠을 하러 오신 사장님이 '이걸로 해보라며' 미장용 흙손을 빌려주셨는데, 다섯 배는 힘이 덜 들더라고요. 하하하. 

 꼭! 용도에 맞는 도구를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갖추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핸디코트를 바르기 전에 최대한 벽을 고르게 만들어 두려고 애썼어요

벽면은 반 시계 방향으로 발라 나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는데 오른손으로 흙손을 쓸 때 반 시계 방향으로 발라 나가는 게 더 수월하더라고요. 물론 편한 방향이 있는 법이지만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시험해 보고 난 후에 편한 방향으로 발라 가시길.


 한 번에 2밀리 정도만 바르라고 해서 정말 그 정도만 바르려고 했어요. 더 많이 바르면 갈라질 수 있다고 겁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2밀리보다 조금 더 두껍게 발라도 너무 두껍지 않으면 간단히 갈라지지는 않더라고요.


뜯어낸 부분 중에 합판과 문짝은 계속 자리를 옮기게 된다

좁은 공간에 천정을 뜯어낸 합판과 각목을 쌓아두고 작업을 하다 보니 무척 더뎠어요. 한쪽 벽을 바르고 다른 벽 쪽으로 합판을 옮겼다가 먼저 바른 벽이 마르면 다시 옮기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거든요. 

 여기서 깨달은 건 작업 공간과 자재를 쌓아두는 공간을 분리하는 게 인테리어에서는 첫걸음 같은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철거가 완전히 끝나고, 벽과 천정의 처리가 끝난 후에 자재가 들어와야 일이 수월하겠더군요.

 철거한 목재와 판재를 버릴 수도 있었지만 꼭 시도해보고 싶은 방식이 있어서 보관했어요.

 공간을 만들기 전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주셨는데 그중에 '아카이빙'과 '리사이클링' 그리고 '업사이클링'이 접목되면 의미 있는 공간이 나올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어떻게, 무엇을 아카이빙하고, 마찬가지로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을 어떤 소재에 어떤 형태로 시도할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예감이 들었어요. 거의 버리는 것 없이 다시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요.

천정은 먼지만 털었을 뿐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합판으로 막혀있던 윗부분도 손대지 않기로 했고요.

이 부분이 나중에 어르신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해요.

들어오셔서 일하는 걸 보시다가 나가시기 전에 하시는 말씀들이 '그래서, 천정은 페인트 칠 할 건가?'라거나 '천정은 안 하나?'라거나 '저거만 보면 껄쩍찌근혀 죽겄네'라거나 하는 거였거든요.

 그래도 꿋꿋이 방치했습니다. 뭔가 천정까지 깔끔하고 매끈해지면 이상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벽을 바르고 말리고 바르기를 반복한 끝에 일단 벽면 작업은 마무리됐어요. 페인트나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에 닿았고 다른 분들도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셨거든요. 어떤 분들은 페인트칠을 한 걸로 보시기도 했어요. 이 정도면, 성공적!

 


벽면 작업에 들어간 핸디 코트와 흙손 구매 비용은 7만 원 정도입니다. 전문가 분께 맡겼다면 더 빨리, 깔끔하게 나왔겠지만 누렇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지고, 못을 박은 충격으로 부서지고 뚫려있던 벽을 내 손으로 매끈하게 만들었다는 만족감은 작지 않았어요. 

 4월 10일.


벽지를 뜯기 시작한 지 12일 만에 벽 작업이 마무리됐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게 아니라 정확한 셈은 아니지만 아무튼요.


만리장성도 주춧돌 하나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공간은 벽에서부터 책방이 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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