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없으면 물건도 없다
셀프 인테리어는 처음인 가가C입니다.
공간을 책방으로 만드는 작업 모두를 직접, 내 손으로 해보겠다고 마음먹기 이전에 해본 DIY는 집 현관 센서등을 교체한 거였습니다. 좀 더 보태면 한쪽 벽면 일부를 도배한 정도죠.
이 정도는 누구나 하면서 지낼 거라서(꼭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요)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작고 사소한 작업, 경험들이 없었다면 공간 DIY 인테리어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을 거예요.
작은 교훈으로 정리하고 시작하자면,
지금 혹은 이전에 경험한 무엇, 그 경험이 아무리 작고 사소하다 할지라도 그 경험의 가치까지 작고 사소하지는 않음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천정은 어떻게 되었나?
전선의 연결 구조, 전원 위치를 파악하기까지 마친 후에 생각한 건 조명을 어떻게 할까였습니다.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막연하고 애매한 이미지만 품고 다녔습니다. 멋지고 예쁜 조명들로 빛나는 공간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서 보기도 하면서 '이러면 어떨까, 저렇게 해도 좋겠다' 했죠.
다행스러운 건 '이것만은 꼭'이 없었기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 활용성이 큰 '무엇'을 택한 거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무엇'과 '무엇들'의 이름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이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전기, 조명에서 아는 이름이란 전선, 전구, 스위치, 콘센트 정도뿐이었거든요.
우선 '무엇'은 천정에 박히거나 걸려 있으면서 조명을 탈착(붙였다 뗐다)할 수 있는 조명 시설이었습니다.
이름은 몰랐지만 다행한 건 자주 가는 공간에서도 '무엇'을 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무엇의 이름은 '레일 조명'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레일처럼 생겼군요.
일단 레일 조명을 쓰기로 했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검색과 쇼핑의 본격적 시작이었더군요. 레일 조명에 탈착 하는 소켓(??)을 포함한 부품들. 연결하고, 마무리하고, 전원이 되고, 레일과 연결하는 부품들과 전선까지. 뭘 쓰고, 어떤 게 좋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동시에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도 무수히 고민했습니다. 레일 조명 부속과 등까지 같이 사는 게 더 싼지 아니면 따로 사는 게 더 싼지. 어느 쪽을 택해야 효율이 높은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더군요. 다시 하루, 이틀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했는데, 어떻게 정했느냐고요?
적당히 서너 군데를 찾아본 후 괜찮다 싶으면 결제를 했습니다. 제가 택한 방법은 전부 따로 사서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하는 거였는데요. 기성품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는 경우에는 완성품을 세트로 사도 괜찮겠더군요. 국산이라고 하는 물건, 똑같이 생겨 보이지만 몇 백 원 더 비싼 게 낫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몇 차례 어긋난 후에는 더욱더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으니까요.
제일 싼 판매처를 찾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DIY 작업은 주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이기에 되도록이면 선택 과정은 간결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해요. 최저가 찾기보다 빠른 선택으로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거죠. 물론 한두 군데 비교 검색을 해봐서 터무니없는 걸 사는 일은 피하죠.
비율은 무시하고 도면을 그려서 대략 측정한 수치를 적었습니다. 레일 조명의 경우 측정한 길이로 맞춤 주문도 가능해요. 하지만 길어지면 파손 위험과 택배 비용이 커져서 기존에 판매하는 길이로 구매했어요.
오른쪽 사진에 중간중간 동그라미를 친 T, ㄱ, ㅡ자는 레일 조명 중간 연결 소켓을 표시한 거예요. 틀린 그림 찾기도 아니고 도면에 큰 오류가 있는데요, 숫자로 표시한 1, 2, 3이 전원부거든요. 저 배치로 전원을 연결하면 중간 연결 부분 위치도, 필요한 숫자도 틀리게 됩니다.
거의 처음 그린 모양에 가깝게 조명을 설치했지만 전원 소켓의 모양이나 위치에 변화가 있었어요. 레일 하나에 얼마 간격으로 몇 개까지 조명을 써도 되는지도 알지 못했지만, 전원을 여럿으로 나누는 게 부분적으로 조명을 끄고 켤 때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세 군데로 나누었어요.
레일 조명과 부속이 도착하고 연결하고 천정에 구멍을 뚫고(여기엔 이렇게 간단히 적지만 핸드 드릴로 콘크리트 천정에 구멍을 뚫는 건 어마어마하게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고정하기까지 이틀이 걸렸습니다. 천정에 구멍 뚫는 게 제일 힘든 작업이었어요.
한참이나 전동 드릴(강력한 해머드릴 기능을 갖춘)을 살까 말까 망설인 것도 이 시점.
왼쪽 사진도 좀 설명하자면 외곽선 안으로 중앙에 '24', 위쪽에 '55', 가로로 '45', 오른쪽 '52'는 책장, 테이블의 너비를 적은 거예요. 그렇다는 건 오른쪽 사진보다 왼쪽 사진이 나중에 그린 도면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저도 벌써 헷갈리는데, 새삼스레 저런 걸 보고 잘도 작업을 했구나 싶네요.
전선도 구매했는데 빨강, 파랑을 30미터씩 샀고, 스위치 연결 위해서 선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시장 전파상에서 노랑을 15미터 샀어요. 전선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깜짝.
규격은 HIV전선 2.5Q.
전원을 여러 개 설치할 생각은 없었고, 전열기 사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많이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 혹시나 설치할지 모를 냉방기를 위해 전용 콘센트 하나를 빼놓는 것까지를 염두에 넣은 주문이었어요.
결과부터 얘기드리면 노랑은 3미터 정도 부족했고 파랑은 다 썼고, 빨강이 1.5미터 정도 남았습니다. 쓸 데 없기는 마찬가진데, 이 정도면 알뜰하게 잘 썼다고 생각해요.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는데 딱 하나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한옥에서 보던 하얀 도기 재질의 그, '그걸' 꼭 설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름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옥', '전기'하는 식으로 검색을 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한참을 찾았습니다. 물어보기도 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러다 정말 우연히, 찾던 걸 발견했습니다.
'그걸'의 이름이었죠.
한옥에서 전선 배선에 쓰는 그 하얀 도기 재질 부품 이름은 '애자'였습니다.
왜 애자?
찾아보니 한자를 이렇게 써요.
碍子(insulator).
'애'는 거리끼다, 장애가 되다, 지장이 되다로 절연체를 의미하는 듯했어요.
장애라고 할 때 그 '애'더군요.
애자는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요.
정석은 감거나 꼬는 일 없이 중계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근본이 없는 DIY 작업 자니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해봤습니다.
사실, 전기 작업 과정은 할 얘기가 한참이나 남았어요. 하지만 구구절절해지니까 적당히 마무리하려고 해요.
파랑, 빨강을 일부러 하트 모양처럼 빙글빙글 만들었는데 그 첫 번째 시도가 사실은 우연의 우연에 의한 우연한 효과이자 결과였다는 점, 드라이버를(꼭 십자드라이버) 이용해서 전선을 돌돌 만 다음에 다른 선을 통과시키는 (전기와 자기를 조금만 알면 시도하지 않을) 작업은 그냥 재밌어서 해본 거였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직 잔뜩 남았지만요.
천정에 차단기가 달린 사연도 몇 줄짜리는 되지만 그도 생략합니다.
그렇게 벽에 이어 천정 조명과 전기가 '거의'(80%?) 마무리됐습니다.
다사다난했다 싶은데, 앞으로 더 다사다난할 줄,,, 알았네,,,,
전체 공정률, 30%.
날짜는 벌써 4월 말에 닿아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