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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04. 2019

공간은 어떻게 책방이 되는가 #10

저, 목수 아닙니다

오늘은 목수 가가C로 인사드립니다.


공간 작업을 시작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

재밌는 오해가 생겼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두 번, 많을 때는 세네 번씩 이런 물음을 듣게 된 거죠.


"목수세요?"


이런 질문도 많았어요.

"목공방이에요?"


대답은 물론, '아니오'였지만 받아들이는 모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그럼 뭐예요?'라며 추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제 대답과 무관하게 '저긴 목공방이구만'하는 결론을 내린듯한 모습으로 돌아갔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지인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곤 했습니다.

"저기, 목공방이야."

-아니라고 했습니다만.


재료는 모였다

공간에 창문이 없다 보니 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작업할 때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때로는 문을 떼어놓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간 안에 쌓인 목재와 톱밥, 공구들이 한눈에 들어왔을 겁니다.

사람은 거의 누구나 타인의 말보다 자신이 봤다고 믿는 걸 신뢰하는 법이기에, 나중에는 어떻게 판단을 내리든 마음 쓰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됐죠.


하루하루 대략 이런 풍경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나마 사진으로 남은 건 깔끔하고, 정갈한 편이고요.

이쯤되면 공방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모아 온 재료들은 사실 맥락 없이 가져온 '쓰레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을 거예요.

글쓰기에 빗대어 보면 '사전'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네요. 가득하고, 쓸 수 있고, 쓰일 데가 분명 있겠지만 쓰기 전에는 그저 '있을 뿐' '존재'하지는 않는 가치 있는 쓰레기요.


가가 목공방에서 목수로서 제일 먼저 만들기 시작한 건 테이블이었어요.

재료는 비중 순으로 나열해보면,

평화강에서 가져온 의자 + 한옥 신축 현장에서 가져온 판재 + 한옥 신축 현장에서 가져온 각재 + 공간을 철거할 때 나온 각목.


추가한 주요 공정은 의자는 분해, 판재와 각재는 대패질과 깎는 작업(끼우고 맞추기 위한), 절단, 수성 바니시 칠.


목공 작업을 할 때의 최우선 목표는 최소한의 공구(누구나 집에 하나씩은 갖고 있는 공구 + 저렴하게 구매 가능 + 부피가 크지 않고 + 너무 무겁지 않은)를 사용하고, 버리는 목재도 최소화 하기였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노인 복지관에서 걸어 나오시더니 작업 중인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거셨죠.


"뭘 만들고 있어요?"

- 테이블을 좀 만들어 보려고요

(중략)

"내가 20년 넘게 가구 집을 했는데."

- 아아~ 그러셨구나?

(중략)

"한 30년 넘게 목수로 일하다가 가구 집을 했어요."

(여든은 확실히 넘어 보이셨는데 정말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을 섞어하셨어요.)

- 오오~ 목수 일도 하셨구나.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옛날에는 쪽방에 베니어합판으로 찬장 만들어 주는 일을 했는데, 그거 하나 만들면, 00원이었어요."

(중략) 

이제 흥미진진한 부분.

"한 번은 어느 집(무슨 장관)을 짓는 일을 하게 됐는데, 그때 연장이 없었거든, 그래서 장관님이 일본 가실 때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두 개를 사 오셨더라고."

"이제 몇 달 걸려서 집을 다 짓고, 일 다 했으니까 그 집을 나오는데 장관님이 불러서 그러더라고요."

- "이건 왜 놓고 가? 이걸 누가 쓰라고?"

 "일본에서 장관님 돈으로 장관님이 사 온 거니까 내 것이 아니라서 놓고 왔는데 그걸 주겠다고 하시니까, 그럼 제가 돈을 얼마 내겠습니다, 했더니 미친놈~ 그러시면서 다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그 연장이 한국에 없었거든, 잘 썼지."

(후략)


결국 한 시간 가까이 지난 50여 년 간의 목수 인생과 가구점 이야기를 들었,,,

결론은! 

이제 목수 일은 끝이 보이니, 너는 인테리어를 배워서 그쪽으로 나가야 한다.

였습니다.


또 다른 사건!


공주 원도심에는 한옥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곳이 많아요.

당연히 목수분들도 많겠죠?


어느 날부터인가 목수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나시던 목수분들이 나무 필요하면 어디 어디쯤에 현장이 있으니 들르라고 얘기해주기 시작하셨어요.

이때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건, 어디 창고를 얻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였는데요, 

언제까지나 목재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나올 때, 준다고 할 때 모아둬야 나중에 뭘 만들어도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심히, 심각하게 목수의 길로 나아가는 걸 생각해보았습니다.

책방을 만들면서, 목수의 길을 고민하다니.

참.


하지만,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저는 목수는 아닙니다.

재밌었고, 손재주가 좋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기에 목수는 안 합니다까지는 아니지만 기왕 목수를 한다면 목재만 끼워 맞춰 가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책과 책을 잇고, 책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목수를 꿈꾸고 싶달까요?


 테이블 만들기로 시작한 목공 일이 날이 갈수록 재밌던 그때를 돌아봅니다. 

궁즉통, 재료나 도구 면에서 매우 궁했기에 오히려 통하게 만들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과 단단해진 확신.


경험과 확신이 더해지면서 공간은 책방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만든 첫 테이블.

첫 테이블 작업 중


그렇게 공간은 책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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