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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21. 2019

공간은 어떻게 책방이 되는가 #12

표절도 짜깁기도 아니다

가가책방 메인 서가

안녕하세요. 가가책방, 가가C입니다.

가가책방에는 메인이라고 할만한 서가가 둘 있습니다. 

우선 밖에서 보이는 '전시서가'. 


그냥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가장 많은 아이디어와 고민, 깎고 다듬고 끼우고 맞추는 시간을 들인 서가가 바로 전시서가예요. 

'전시서가'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원래 있던 재료를 모아 책방을 만들듯 특정한 장치, 공간을 지칭하는 이름을 만들어 본 거죠. 

 간단히 설명하면 보이는 그대로, '전시'와 '서가'를 합쳤을 뿐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서가'정도의 의미죠.


 책방이라면, 특히 큐레이션을 계획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책방이라면 주제나 의도에 맞춰 고르고 뽑은 책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겠죠. 가가책방에서 그 역할을 하는 공간이 바로 전시서가고요.

 다른 측면으로는 처음으로 책방에 들어선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시선을 두게 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첫인상이 거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하기에, 마음 쓰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죠.


전시서가는 공간 작업 중에서도 후반에 만들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했다기보다 '그렇게 됐다'는 말이 더 정확한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도 했고, 재료 중에서도 다른 부분에 쓰고 남은 재료를 가장 많이 활용하게 될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시서가는 상부와 하부로 나눌 수 있어요. 상부는 다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눌 수 있고요.

상부 오른쪽은 철거한 문설주 하부와 상부를 좌우로 세우고 기존 공간에 있던 문설주에 임시로 고정했어요. 

상부 왼쪽은 신축 한옥 현장에서 가져온 목재 중에 10mm 정도 홈이 파인 목재를 좌우로 세웠고요.

왼쪽과 오른쪽은 상부에서 고정하고 하부는 하중으로 자연스럽게 눌리게 뒀죠.


 주안점을 둔 부분은 철제 피스(나사못) 사용 최소화였습니다. 최대한 끼우고 짜 맞춰 만들고자 했죠. 

결과를 먼저 얘기드리면 성공이었습니다. 

 문설주와 홈에 끼울 목재는 한옥 신축 현장에서 얻어온 마루목을 썼어요. 오른쪽 문설주에 끼운 목재는 깎아내지 않아도 딱 맞았고, 왼쪽 홈은 목재 쪽이 좀 더 두꺼워서 몇 mm, 아마도 3mm 정도 깎아냈습니다. 

 이 작업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절단은 모두 작은 톱으로 했고, 작업 공간이 좁다 보니 재료와 공구를 여러 번 옮겨야 했거든요.


 전시서가 상부 작업에서 무엇보다 오래 걸린 작업은 판재에 각재를 끼우는 작업이었습니다. 정말 한땀한땀 구멍을 내고, 깎고, 끼우고, 고정하기를 이틀은 했을 겁니다. 


 나름대로 고민을 한 부분들이 있어요. 

진열한 책이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무엇으로 할까?

책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더라도 각재가 기울어질 수 있는데 방지할 방법은?

몇 권이나 진열할 수 있게 만들까?

책과 책 사이 간격은?

적어보니 고민한 부분이 많네요.

어쩐지, 작업이 힘들더라니.


 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하며 열심히 작업을 한 덕분인지 상부 작업을 끝내고 보니 제법 만족스럽더군요.


하부 작업은 처음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우선 각재를 통나무 기둥에 끼워 맞추는 걸 포기했어요.

전혀 몰랐는데 통나무는 깎거나 자르거나 다듬거나 하는 작업 하나하나가 각재나 판재보다 몇 배는 힘들더군요.

 절단기나 전기톱 같은 장비를 썼다면 달랐겠지만, 공구를 빌리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최대한 내 손으로 해보자는 다짐이 몇몇 작업을 포기하게 했던 거죠.


 처음에는 임시로 고정할 생각으로 박아둔 나사못이 고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결정이었습니다.

사실 안쪽은 통나무를 잘라내고 각목을 끼워 맞췄어요. 그런데 정확히 재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통나무 두 개를 나란히, 그것도 위아래 네 군데를 맞추는 게 정말 어렵더군요.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며, 그 순간의 결정이 그 후 많은 걸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체감했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하부 기둥을 세우고 안쪽과 바깥쪽에 각목을 대고, 가장 위에는 묘한 모양으로 잘린 판재 두 장을 붙인 상태로 올려두었습니다. 거칠게 고정을 했는데, 가장 많은 못이 박힌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래 두 칸은, 중간 칸은 여러 종류의 자투리 판재를 선반 형태로 짜 맞춰 올려 수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아래엔 각목 자투리의 한쪽 면만 대패로 깎아서 다듬은 다음 짜 맞춰 올려 수납할 수 있게 했고요.

 중간과 아래에 올린 판재와 각목은 전혀 고정시키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올려두었죠. 

 왜냐하면, 고정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물론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에 '안 될 게 뭐야' 했고요.


전시서가 밤과 낮.

전시서가는 가장 여러 곳에서 온 나무들이 모인 공간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가장 긴 시간을 머금고 있으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저 역시 고민하는 시간, 생각하고, 만드는 시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고요.


 재료와 공간과 시간에 노력까지.

모든 게 더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짜깁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전적으로는 짜깁기와 동일한 기능을 하더라도 말이죠. 


 이 공간을 책방으로 만들면서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요.

표절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공간과 같은 공간은 세상 어디에도, 다시는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요.


 단순히 버리는 재료, 뜯어낸 목재, 남은 자재를 활용했다는 방법은 복제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재료, 목재, 자재의 출처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한 공간에 모았다는 사실은 복제할 수 없겠죠.


 공간을 책방으로 만드는 과정.

그것은 표절도, 짜깁기도 아닙니다.

그 과정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영원히 새로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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