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좋아한다는 건 무엇인가

정답이 아니라 대답입니다

by 가가책방

사람들은 자꾸만 묻는다.

무엇이 왜 좋은지, 누구의 어디가 좋은지.

좋은 이유, 좋아하는 이유를 내어놓아 마땅하며, 내놓지 못하면 그 좋음, 좋아함이 거짓이 되거나, 뜬구름식으로 허황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돌아보면 질문이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답하던 때가 많았다. 평소 이유를 생각 않던 좋음이나 좋아함에서 이유를 찾아서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쫓겼다.

혹시 비슷한 마음이던 순간이 있다면, 2020년에는 이렇게 답해보면 어떨까.


"왜 좋으세요?"
"좋아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얘기 끝에 웃음웃음.


제목으로 쓴 '좋아한다는 건 무엇인가'를 읽고, 좋아한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러면서 좋아하는 무엇이든, 누구든지를 떠올렸다면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잘 들어두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데 논리는 필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데 이유도 필요 없다.

눈치챘겠지만 '논리가 없다'거나,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 '필요하지 않다', '필요 없다'고 적었다. 당연하게도 이유는 있다. 없다가도 생기고, 불분명하다가도 분명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유를 찾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태어나서 6개월쯤 됐을 때 기억을 떠올려보자. 그때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데 자꾸 젖병을 물려주고, 졸려서 우는데 기저귀를 뒤적이고, 고양이를 자세히 보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며 쫓아 보내던 오해의 날들.

그런 날들은 없다. 생후 6개월은커녕 6년까지도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 하지만 떠올릴 수 있고, 굳이 얘기해보라고 하면 전해 들었거나, 사진에서 본모습을 기억처럼 얘기할 수는 있다.


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변론할 필요 없는 감정에 이유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좋은 답이 있지 않은가.

"그저, 그냥, 좋아."

얼마나 커다란 다행인가.

좋아하는 건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KakaoTalk_20200103_070757056_01.jpg "너, 나, 좋아하냐." "아닐걸." "쟤들 연애하냐. 어우, 눈 감아야지"

2020년에는 "왜 좋으냐거나 왜 좋아하냐"는 물음이 찾아오면 그저 웃으며 보내주어야겠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다.

싫을 때, 싫어할 때. 우리에겐 이유가 필요해진다.


좋아한다는 건 무책임할 수 있는 감정이다. 너무 좋은 감정을 책임질 수는 없다. 좋아서 저지른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좋아한다는 말에 어울리지 않지만 불행히도 벌어지는 일이다)인 결과, 벌어진 일,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이나, 사람에게 심리, 물리적 피해 혹은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무책임해도 비난받지 않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거다. 타인은 물론 스스로에게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싫음은 어떤까? 심지어 그냥 싫은 순간에도, 세상은, 사람들은, 스스로도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던가.

싫어하는 마음, 싫은 기분은 세상과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싫어할 수밖에 없는 정당하고도 마땅한 이유들을 말이다.


좋아하는 이유를 제대로 답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의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든 세상이든. 하지만 싫어하는 이유를 답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세상도 의심스럽게 여기기 마련이다. 싫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면 싫어하는 자신에게 잘못이, 책임이 있는 게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기 위해, 싫은 이유가 필요해지는 거다.


그냥, 왠지 싫을 수는 있지만 싫어한다고 말하려면, 싫음을 드러내려면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건 정당화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정당화할 필요도 없는 거다.



KakaoTalk_20200103_070757056.jpg 어느 골목길.

골목길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생긴 골목길을. 안으로 20미터쯤 되는 데서 왼쪽으로 꺾인 탓에 그 안이 보이지 않지만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좋아한다는 말과 잘 어울린다. 반대로 말하면 좋아하는 이유는 말할 수 없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종 떠올릴 수 있다는 거다. 그 때문에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다.



여우를 길들인 어린 왕자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한다는 건 책임을 동반한다. 자신에게나 대상에게나 상대방에게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함을 요구한다. 좋아하는 풍경이 있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골목길이나 운치 있는 건물 같은. 그 공간이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공간과 건물 주변의 요소들 전부가 내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지켜내고 싶고 책임지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나의 의지와 다르게 변하거나 사라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한계를 이유로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책임질 수 없음을 정당화해야 하는 걸까.

앞서 적은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 '이유가 필요 없고, 정당화하지 않아도 되며, 책임이 동반된다'고 했다. 만약, 한계를 이유로 포기하면서 책임질 수 없음을 정당화한다면, 그건 어떤 좋음, 좋아함이었던 걸까.


책임이라는 말이 오해를 부를 수도 있겠다. 이 책임은 당연하게도 전적이고 완전한 그 어떤 조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의미에서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거다.


좋아하던 골목이 자꾸 사라지고, 운치 있어 마음에 들어하던 건물도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는 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좋아한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답하는 글을 쓰는 지금이 좋아함, 좋아하는 마음을 책임지려고 택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좋아한다는 건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거다. 오래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거다. 스스로의 마음에서도, 세상에서도, 온전한 마음, 온전한 모습으로.


좋아하는 무엇 혹은 누군가가 있는가.

왜 좋은지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았는가.

그럴 때는 슬며시 웃자.

이만큼 좋아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 말 없이 얘기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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