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읽는다는 건 무엇인가

/정답이 아니라 대답입니다/

by 가가책방

2020년 1월 1일에 있던 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길지 않은 통화의 요지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는데, 상상할 수 있는 달콤한 이야기는 아니다. 몇 시간 후 실제로 나타난 그는 떠나기 전에 이런 질문을 했다.

새 해, 새 날.

특히 1월 1일이라면 얼마든지 용납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오히려 묻지 않으면 실례가 될 거라는 확신이 담긴, 그러나 묻는 이로서는 진심으로 궁금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 질문은 이거였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요?"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1월 1일이라면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계획이라니.'

계획을 세우는 데는 익숙하지도 않고, 계획대로 된 그 무엇을 떠올리기도 힘들고, 실제로 당분간 계획을 세울 계획도 없어서 그런 계획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렇게 답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 계획이 없다고 한 결정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 질문에 등장한 '계획'이 나 '개인'의 계획이 아닌 '우리'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런 계획을 세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질문하고 답하기의 결론으로 삼고 싶던 말, 요컨대 핵심은 엉뚱하게도 이런 거다.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의도를 내 기준에서 해석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손님을 보내고 계획이라기보다 마음먹고 있던 걸 행동으로 옮겼는데, 그 하나는 언제부턴가 자꾸 눈에 걸리던 제목의 소설. 로맹 가리라는 프랑스 작가의 <여자의 빛>이라는 책을 가방에 챙겨 넣는 거였다. 왠지 2020년 처음으로 읽을 책으로 삼기에 좋을 듯한, '기대'라고 말해도 좋을 마음으로.


1월 2일 새벽, 늦게 잠들고도 일찍 일어났을 때 떠올린 것 중 하나는 머리맡에 꺼내 둔 <여자의 빛>이다. 표지를 보고, 제목을 다시 읽으며 묘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건 기대였을까, 예감이었을까. 본문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이미 읽은 책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런 이상한 일이 드문 건 아니다. 읽지 않은 듯한 심지어 낯설고 생소하기까지 한 책이지만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읽었다'는 걸 알게 되는 일 말이다. 한 장, 한 장면, 한 대화를 따라가면서 인물이, 이야기가 점점 친근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다음 페이지의 어떤 사건, 책의 결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읽다 말았거나,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걸 읽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중간쯤 되는 부분을 펴봤다. 기다렸다는 듯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여전히 결말은 떠올리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보는 건 쉬운 일이다. 그 결과도 예상 가능하다. 전에 읽었던, 이미 알고 있는 그 결말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던 책이라는 얘기다.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


습관처럼 떠오른 질문이다. 읽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책들을 읽었다는 것,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

읽는다는 게 뭘까. 읽은 다음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무엇이 남아야 할까, 혹은 무엇을 남겨야 하는 걸까. 그런 게 있는 걸까. 있어야 하는 걸까. 없어선 안 되는 걸까. 언제나처럼 질문은 대답을 내놓기 전까지 지겹도록 이어질 기세를 보인다. 되든 안 되든 대답해볼 수밖에 없다.




읽는다는 건 기억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의 결과로 행동에 옮긴 건 읽은 책 리스트를 만드는 거였다. 고작, 제목, 저자, 출판사, 간단한 내용을 기록하는 게 읽는다가 남긴 결과였다.

그 후 언제부턴가 해석하고, 떠오른 걸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 책을 여러 번 읽고 먼저 남긴 기록과는 전혀 다른 결에서 같은 이야기를 해석하고 기록하기도 했다.

북클럽의 세계를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읽는다에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의미가 생겨났다. 읽는다는 건 때로는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를 돕고, 대화하는 걸 의미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읽는다는 건 단순히 책을 펴서 글자를 읽고, 다 읽은 후에 페이지를 넘기기를 거듭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책을 덮는 동작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에. 읽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을 거라는 이야기다.


지금 내놓을 수 있는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최선의 답은 '대화'다. 앞서 새해 첫날 찾아온 방문객과 나눈 이야기에서 핵심이라고 결론지었던 대화 말이다.


모든 대화를 기억할 수는 없다. 누구와 대화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대화가 가치를 상실하는 건 아니다. 또 중요한 건 읽을 때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건데, 대화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기준으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보다 이야기의 맥락, 의미, 메시지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보면서 관점과 마음을 확장해 나가는 거다. 이야기 자체는 잊어버려도 한 페이쯤 마음이 넓어지는 일. 읽는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지금까지 답해보려고 했던 건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하지만 알고 있듯이 우리가 읽는 건 책만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걸 읽고, 마주하고, 해석하고 있는지 떠올려 보자. 예전에 자주 하던 말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은 몹시 심오하고도 두꺼운 책이다. 예컨대 '사람책'이라고 하는 개념을 접해본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며, 어려운 대상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누구도 사람의 모든 이야기, 속마음을 다 알고 타인을 대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이상한 건 종종 우리가 책을 읽을 때보다 사람을 대할 때 더 경솔하고, 성급하며, 자기중심적으로 군다는 거다.

읽는다는 건 정답 찾기가 아니다. 정답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절대적으로 옳을 수도 없다. 대화에 여유와 여지가 필요한 것처럼, 읽는다는 것 역시 여지를 필요로 하는 거다.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은 어느 정도의 어리석음을 품고 있다. 답을 해놓고 나서야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른 대답을 내놓는 게 당연한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게 아닐까.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 답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처럼, 읽는다는 건 읽는 과정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는.


뭔가를 읽는 계획을 세워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읽을 것, 일상에서 우리가 읽는 것이 책이라는 물성을 갖고, 이야기라는 내용으로 채워진 하나의 완결된 어떤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2020년에도 우리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보다 더 길고, 해석하기 난해한 무수한 '읽을거리'와 만날 거다. 당황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보자. 읽는 건 습관인 동시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니까.


새로운 한 해, 잘 읽고, 잘 자라자.


KakaoTalk_20200102_074655680.jpg 심심할 땐, 이 사진이 뭔지 읽어보자. 해석을 남겨봐도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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