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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24. 2020

가가책방 #공산성의 밤은 혼돈의 카오스

가가책방 로컬 로망스

공산성 야경

로컬, 공주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공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세 곳이나 있다는 거다. 첫째가 공산성, 둘째가 송산리 고분군, 셋째가 마곡사. 순서야 어쨌든 세 곳 이상이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찾아보니 정확하게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묶이고,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분류되어 있다. 세부적으로야 어떻든 상당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산성 같은 공간을 자주 찾지 않아 다른 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공산성은 야간에도 출입이 가능하다. 특히 산성 외곽을 빙 둘러 설치된 조명은 밖에서 바라보는 산성을 멋지게 치장한다. 사진도 잘 나오고(산성의 모습) 별도의 조명 없이도 산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하나 조명이 없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밝은 곳에서는 볼 수 없던 무수한 별을 만나게 된다. 

로맨틱.

 이런 게 로망 아닐까.


 산성 외곽을 밝히는 조명에 단점도 있다. 외벽을 비추다 보니 상대적으로 산책로에 그늘이 지게 되는 거다. 중간중간 가로등이 있기는 하지만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라 눈 온 후나 비 내리는 날에는 방문을 삼가는 게 좋다.


 

공산성 야경

 공산성은 크게 돌면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작게 돌면 한 시간 안쪽으로도 둘러볼 수 있다. 

주로 돌아보는 코스는 금서루(서문)로 들어가서 진남루(남문)를 거쳐 공북루(북문)를 통과하는 거다. 본래 성에서 서문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인지 남문, 진남루를 정문으로 하는 계획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조금 더 완전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사천왕 깃발이 각각의 문 주변에 걸려 있다.

서쪽은 백호라 금서루에는 백호 깃발이, 남쪽은 주작이라 진남루에는 주작이, 북쪽은 현무라 공북루에는 현무 깃발이 나부낀다.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이 백호, 주작, 현무, 청룡들이 정말 백제의 형상 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멋져 보이는 순간이 더 많다. 

 어쨌든 없는 것보다 나으니까.


 지금은 날이 포근해져서 산책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지만 조금 더 춥던 날에는 산성 전체를 전세 놓은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건 뭐, "내가 백제의 왕이다!"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흔들렸는데, 금강철교다

공북루에서 금서루로 오르다 보면 공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옛날 사진들을 보니 학생, 시민, 관광객들이 소풍 와서 멋진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던 곳이다. 금강철교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이기도 하다. 

 백제문화제 때 색색의 조명으로 치장하는 금강철교와 철교 아래 불을 밝히는 뗏목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며, 불꽃놀이를 즐기기(백제문화제 때면 엄청나게 쏘아댄다)에도 좋은 곳이다.

 

 참고로 금강철교는 국가등록문화재 232호에 등재되어 있는 문화재다. 1933년에 완공됐는데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길이가 513미터, 지금은 별로 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대단했겠지. 

 놀라운 건 이 다리를 짓는데 2년이 걸리지 않았다는 거다. 아, 놀랄 일은 아닌가? 


 공주에 와서 알게 된 또 한 가지가 금강철교에 얽힌 비화다. 

당시 공주에서 부를 축적한 공주 갑부 김갑순(소유 토지가 10,110,000평이었다는)이 자신의 땅으로 충남 도청을 옮기는 대가로 철교 건설 비용을 냈다는 거다. 한 사람이 얼마나 거대한 부를 갖고 있으면 그 당시에 이 정도 규모의 다리를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다리를 지어줄 정도라면 당시 도청 이전으로 얻은 부가 얼마나 크다는 걸까.

 상상하기 어렵다.


 로컬, 소도시 공주에서 살면서 누리게 된 의외의 효과는 지역에 숨은 소소한 이야기와의 흥미진진한 만남과 사치스러운 환경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거다. 

 고작 서울에서 1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사람들을 만날 때 습관처럼,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정말로 정말이다.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로컬의 야경을 즐기러, 조만간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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