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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25. 2020

가가책방 로컬은 밤낮없이 꽃잔치

가가책방 로컬 로망스

고양이 공원에 흩날리는 매화꽃잎

봄은 꽃이 흔히 피는 계절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봄의 꽃은 체감이 아니라 인지에 그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봄에 꽃이 피는 것도 알고, 꽃이 어디에 피어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언제쯤 필 거라는 것도 알고, 심지어 여기저기서 꽃을 봤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저 들어 아는 정도에 그쳤던 거다. 


 2020년, 공주에서 맞는 두 번째 봄.

돌이켜보면 지난해에도 지금처럼 자주 꽃을 따라다니지는 못했던 듯하다. 뭐가 바빴는지,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사진첩을 뒤져봐도 꽃을 찍은 건 벚꽃부터다. 그러니까 로컬, 공주의 꽃을 제대로 즐기는 건 이번 봄이 처음이라는 이야기.


 새삼스런 얘기지만 공주는 흙이 흔한 만큼 꽃도 흔하다. 회색보다 초록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많아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흔한 것과 누리는 건 별개라는 거다. 너무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한 번 적어둔다.

 

 한낮에 유난히 따뜻했던 날이었다. 밤 산책을 나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 공원을 지나면서 눈처럼 희게 흩날리는 풍경과 마주쳤다. 눈꽃이 아니라 꽃눈이었다. 며칠 전 핀 매화가 밤바람에 떨어져 흩날리고 있던 거다.  그 풍경이 너무 예뻐서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봤다. 

 

흩날리는 매화꽃잎

사치스럽다고 느꼈다. 그 순간 주위에 우리만이 있고, 불어오는 바람 소리 말고 들리는 소리도 없어 마치 꽃이 날리며 소리를 내는 듯 느끼는 시간.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름답다고.


 

매화와 꿀벌

꿀벌도 몰려들었다. 말벌과 다르게 꿀벌은 뭔가 반갑고, 친근해서 붕붕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고 서있었다. 오래 이 풍경을 마주하고 살아온 어른들도 "꽃이 다 폈네."라면서 한참씩 서서 보고 얘기를 나눴다. 얘기할 주제가 없어도 활짝 핀 꽃을 마주하는 순간 오랜 공감이 이야기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니.


 매화가 피는 사이에 양지바른 곳에서는 묵련이 피었다. 개나리도 움이 트고, 진달래도 피었다. 날이 따뜻해 지난해보다 일찍 자목련도 피었다. 꽃이 필 때는 다 예쁘지만 흰 목련은 뭔가 좋아지지 않는데, 목련이 지는 자리가 유난히 칙칙하고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련 사진은 없다.


 매화가 지는 걸 아쉬워하는 사이에 새로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가 살구다. 며칠이나 날씨가 따뜻해서 잔뜩 물이 오른 꽃망울을 보며 곧 피겠네 생각하고 나서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거의 한 달 내내 꽃을 보고 있는 셈인데, 그 길을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지나다니는 사치가 일상이라니.


 내일은 바람이 불거라고 하는데, 간신히 핀 꽃이 질까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다. 공원 건너에 사는 할머니의 얘기다. 할머니 생각과는 다르지만 그 얘기에 떠올린 장면이 하나 있다. 얼마 전 우연히 봤던 꽃눈 흩날리는 밤 풍경이다. 살구꽃이 질 무렵, 밤바람이 부는 날에 일부러라도 밤 산책을 나와야지. 


 지는 꽃을 아쉬워하기보다 흩날리는 꽃을 보며 즐거워하고, 열매 맺고 익어갈 매실과 살구를 기다리며 행복해해야지. 그리고 더는 나무에 꽃이 피지 않는 날이 오면, 잡초와 민들레를 따라 걸으며, 호호 흩날리고 다녀야지.

 

활짝 핀 살구꽃

로컬은 밤낮없이 꽃잔치 중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람들 속에 섞이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꽃잔치. 

우울해지기 쉬운 요즘, 저마다의 꽃잔치를 찾고 즐겼으면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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