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책방 TWO 공사 일기
지난해 이맘 때다.
다섯 평이될까 말까 한 공간에 가가책방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모으고 머리를 쥐어짜던 날들.
우연인지, 운명인지 올해도 비슷한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간이 두 배쯤 넓고, 100% DIY가 아닌 일부를 전문가가 시공했다는 것, 그리고 자재가 새것이라는 거다.
첫 번째 공간, 가가책방을 만들 때를 돌아보면 두 번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안도하고는 했다. 가장 힘든 고비, 제일 높은 산을 이미 넘어봤다는 생각을 근거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공간을 만들며 새삼 실감한다.
세상에 쉬운 건 별로 없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쉬운 게 별로 없다는 걸 실감하고 받아들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쉽지 않은 걸 쉽게 해내는 사람들, 쉬워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거였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목록이 한 줄 늘어버렸다.
가가책방을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어딘가에서 뜯어낸 목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거의 모든 창의력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박혀있는 못을 뽑는 일도 큰 일이었지만 그보다 어중간하게 짧거나 긴 나무를 적재적소에 써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길을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재료가 새 것이었다면, 얼마나 작업이 쉬웠을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작업이 어려웠던 건 단순히 재료가 어중간해서가 아니었다. 내 실력이 어설펐던 거다. 목수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새삼스럽지만, 존경스럽기도 하다.
옛날 속담에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게 있다. 정말 그랬다. 도구를 탓했던 난 장인이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스스로 장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말 장인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가가책방을 만들 때 거의 3개월이 걸렸다. 물론 주말에는 거의 작업을 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쉬엄쉬엄해서 실제 작업은 40일도 하지 않았지만 오래 걸렸다. 그 이유라고 내놓던 말이 "재료가 헌 것이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린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유가 될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이유도 못 된다. 그냥 게으르게 작업했던 거다.
요령을 모르고, 방법과 원리에도 무지하다 보니 늦어질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하지만 두 번째 공간도 이렇게 버벅거리게 될 줄 몰랐다. 스스로 더 솜씨가 좋아졌다고 믿었고,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문명의 이기들도 구매해서 갖추었기에 더욱 자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대담하게 자를 수가 없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생각 정도만 갖고는 도저히 목재를 자를 수가 없던 거다. 자칫 잘못 자르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목재는 철재와 달리 붙일 수가 없다. 철재는 용접을 하고, 조금 두드리면 처음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목재는 한 번 잘라버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어떤 용도로는 아예 못 쓰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구조재로 '투 바이 식스'라 불리는 목재 한 장의 길이는 3600밀리 미터다. 만약 2400밀리미터가 필요했는데 2300밀리미터로 잘라버린다면 전체를 버리는 셈이 되어버린다. 물론 짧은 목재가 필요한 곳에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새 것을 산 의미가 흐려진다.
이런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히면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1. 잰 곳을 두 번, 세 번 거듭 다시 재보게 된다.
2. 점점 질문의 범위가 넓어진다.
3. 결국 처음 생각한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의 결과물이 나온다.
4. 더 자신 없어진다.
5. 자꾸만 더 머뭇거리게 된다.
6. 작업 속도가 붙지 않고, 한 없이 미뤄진다.
실제로 그렇다. 3월에 준비를 끝내겠다는 다짐을 했던 게 지난 달인데 지금은 5월 중순을 완료 목표로 잡고 있다. 또 작업 기간을 한 달 넘게 잡아버린 거다. 새 재료를 사서 쓰는데도 속도에서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나름대로 설계도 하고, 도면도 그리고, 배치도 생각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해놓고 보면 생각보다 덜 예쁘고, 덜 그럴듯해서 실망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일일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일하자니 작업이 더 더뎌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것이 내 스타일인 걸 어떻게 할까.
시행착오도 거듭 생겨나고, 속도도 지지부진 느리지만 한 곳, 하나씩 모양을 갖춰간다. 계산에 실패해서 간격이 제각각이 되고, 수평이 아닌 바닥을 고려하지 않아서 한쪽이 붕 떠버리는 사고들이 벌어지지만 즐겁게 극복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장된다는 이유로 적당히 단축 영업을 하거나, 휴무를 넣을 수 있으니 이 시기를 좋게 여겨야 하는 걸까.
뭔가 재밌는 좌충우돌 작업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고 말았다.
쓰기와 공간 만들기는 닮았다. 영감이나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면서 확신하게 된 것도 있다. 조금씩 계속하면 조금씩 나아지고, 문제도 해결되어가기 마련이라는 거다. 기억해야 할 건 그냥 계속하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다.
방법을 몰라도, 요령이 없어도, 시행착오를 반복해도 계속하기만 하면 자기만의 고민이 담긴, 노력을 머금은, 독특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그래서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나갈 셈이다.
재밌는 공간에서 즐거운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
혼자만 알기 아까운 기쁨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그렇게, 공주에 두 번째 책방을 열 준비를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즐거움이 더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