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책방 TWO 공사 다반사
번번이 느끼지만 DIY 작업의 최대 묘미는 예측 불가능함이다.
물론 반대로 최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계획이 없이 계획을 완성해야 하는 불가능의 가능이라는 모순된 작업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과 조언을 종합한 결과, 가가책방 두 번째 공간 전면의 윤곽이 완성됐다. 불규칙한 간격으로 수직 배치한 목재에 같은 재질로 만든 벤치가 그 결과물이다. 처음 기획하면서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른 현실이지만 비교적 만족하고 있다. 여러 차례 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불쑥 뛰어든 아이디어가 몹시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디어의 정체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는 책방'.
물론, 우연의 산물이다.
시간은 4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주에는 산성시장을 중심으로 1일과 6일, 5일장이 열린다. 최근에는 코로나 확산으로 5일장이 잠정 중지되고, 장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복숭아나무와 만난 건 목공 작업을 위해 목재 구입을 문의하러 가는 길에서다.
별 기대 없이 평소 나무 장이 서는 곳을 지나가다가 저마다 색을 뽐내며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을 발견했다. 하얀 꽃, 노란 꽃, 분홍꽃. 큰 나무, 작은 나무, 분재, 과일나무. 정말 나무가 많았다.
바로 전날 갑작스럽게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디서 살까, 무엇을 살까 고민하던 내게 찾아든 운명 같은 순간이었다.
목공 작업도 목재 구입도 잊어버리고 무슨 나무가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서 무슨 색깔이 좋을지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가격을 듣고 셈하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마음에 든 분홍꽃을 피운 나무 이름을 묻고 가격도 알아봤다.
마지막까지 경쟁한 건 둘. 분홍과 흰색의 나무. 분홍이 복숭아였고, 흰색이 사과(?)였을 거다.
팽팽할 줄 알았던 둘의 경쟁구도는 의외로 간단히 분홍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무를 고르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많이 크는 나무일 것.
둘째, 꽃이 피고 열매 맺을 것.
셋째, 월동이 가능할 것.
넷째, 적당한 가격일 것.
고작 네 가지 조건이지만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겪어보니 너무 간단히 풀려서 허탈했다.
나무를 사고도 열흘이 지났을 때서야 화분에 옮겨 심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나무를 살 때 사장님께서 이런 말을 했었다.
"열흘 지나고 심어도 괜찮아요."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루어지고 말았다.
열흘이나 미루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벤치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 나무를 심어 넣고 싶은데, 벤치를 만들지 못하면 나무를 심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벤치를 위한 나무인지, 나무를 위한 벤치인지.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심는 작업을 하던 사흘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벌어진 일들이 내게는 제법 흥미로운 경험이었기에 여기에 공유한다.
1. 가져가신 나무 돌려주세요 사건.
벤치를 만든 첫날에는 벤치 상판을 고정하지 않고 올려만 둔 채로 작업을 끝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 어설프게 걸터앉기라도 하면 살짝 올려둔 상판이 떨어지면서 누군가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 진 거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선뜻 앉지 못하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나무토막을 올려두는 거였다.
처음 몇 시간 동안 나무토막은 그 자리에 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돌아와 보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 별 것 아니지만 잃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허전했다. 40센티 길이로 잘라 둔 세 토막의 나무.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마음에 메시지를 남긴 건 당연한 결과였다.
"가져가신 나무 돌려주세요."
나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오늘,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이렇게 물어오신 거다.
"나무, 안 돌아왔지요?"
"앗! 네. 안 돌아왔어요."
"그럼, 가져갔으면 돌아오지 않지."
"네, 별 것 아닌데 잃어버리니 마음이 안 좋네요."
상황은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옆집 편의점 사장님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건넨 거다.
"누가 나무 가져갔어요?"
"네, 나무토막을 가져갔네요."
"우린 누가 화분을 자꾸 가져가요."
"아, 왜 그럴까요."
흥미롭지 않은가.
평소 오가며 고개 인사나 나누던 할아버지가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고, 이웃 가게 사장님이 함께 분노해주는 이 장면. 훈훈하다면 훈훈한 장면인데 재밌는 부분은 다른 데에 있다.
정작 읽으라고 써둔 누군가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지만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유심히 메시지를 읽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더 흥미롭게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그런 일이 있었구나'가 아니라 상당히 깊이 담아두고 있다가 꼭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는 거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심이 만든 현상이랄까.
특별한 일 없는 소도시라면 어디라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본다면, 그 장면이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몹시 이질적이라면,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엇을 하는지 묻고, 어떻게 할 계획인지 알고 싶어 지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아직 제대로 공간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소도시 공주의 작은 작업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한 그루 복숭아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벤치에 앉아 쉬어 가는 이에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를.
식물을 잘 못 키우는 사람이라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어떻게든 될 거라 믿으며.
어제 일을 기억 못하는 스스로를 위한 짧은 작업 기록은 여기까지다.
내일은 내일의 작업 다반사가 기다릴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오늘 밤, 복숭아나무도 새 보금자리에서 편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