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던 6710에 관한 이야기
좋은 생각만 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아서 나쁜 생각도 해보기로 했다.
오해는 말자, 들어보면 그렇게 나쁜 얘기도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건축가 K 선생님은 2미터쯤 떨어진 테이블에서 좋은 생각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좋은 생각에는 어울리는 게 이득, 주면 받는 게 인지상정!
얼마 전 집을 나서다 겪은 일방통행 역주행자의 행태를 흥얼거렸다.
이렇게 했더라면 통쾌했을, 그 어떤 생각을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쁜 생각'이란 기획은 그렇게 시작됐다.
활용은 독자에게 맡긴다.
5월의 화창한 아침, 그날 두 번째 출근길에서 겪은 일이다. 문을 열고, 자전거를 꺼내고 대문을 닫기 위해 길 왼쪽을 확인하고 있을 때 오른쪽에서 빠르게 달려오며 "빵!!"하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검은색 차와 만났다.
"뭐지, 이건?"
일단 대문을 닫고, 자전거에 올라 차를 뒤쫓아 달렸다.
쫓아오는 나를 발견했는지 자동차는 더욱 속도를 높여 골목을 질주했다. 중간에 있는 작은 교차로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큰길과 만나는 교차로에서도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을 뿐, 머뭇거리거나 멈추지 않고 통과해버렸다. 큰 교차로를 통과할 때는 왼쪽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자칫, 작지 않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공주 원도심 몇몇 골목은 일방통행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좀 단순하게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몰라서.
둘째, 그냥.
셋째, 귀찮아서 혹은 바빠서.
첫째 이유로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을 하는 대부분의 운전자는 관광객이나 초행길인 이들이다.
둘째 이유는 이유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이들이 있다. 일방통행인 걸 아는 사람도 있고, 그렇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고, 원래부터 늘 그렇게 다니던 관성으로 역주행하는 사람도 있다.
셋째 이유는 일방통행인 걸 알지만 돌아가는 게 귀찮은 경우다. 급한 용무로 역주행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소도시, 통행이 적은 골목, 어쩌다 역주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닐까.
첫째, 천천히 달리기.
골목은 좁고, 한쪽에 차들이 세워져 있기 쉬우며, 중간중간 샛길이 있어 언제든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는 데다, 대문과 길이 가까운 경우도 많다. 서로를 위해 천천히, 유심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둘째, 미안한 마음 갖기.
일방통행은 약속이다. 그 약속을 믿고 안심한 채로 길로 나서는 사람들, 진행하는 차량들이 있다. 역주행은 그런 믿음을 깨뜨리는 행동일 뿐 아니라, 커다란 위험도 내포한다.
쉽게 말하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게 역주행이다. 그쪽 방향에서 차가 나올 리가 없는데 갑자기 나타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하고도 치명적인 배신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빠르게 역주행하면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 자동차를 뒤쫓은 건 나쁜 생각에서다.
쫓아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꺼낸 사람에게 지레 겁을 먹고 위협하듯 경적을 울린 사람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경고'였다고, '주의'였다고 변명할지 모를 운전자의 경솔한 행동을 탓하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적반하장 격으로 나올 그에게 이치에 맞는 옳은 소리로 모멸감을 안기기 위해서다.
더 나쁜 생각도 했다.
동승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마저 수치심을 안겨주고 싶었다.
당신을 태우고, 멋지게 골목을 질주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위법하며, 커다란 위험을 안고 달리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차를 뒤쫓으며 그 차에 무슨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그 자신이 상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역주행하던 차가 조금 늦게 달렸다면, 큰길을 달리던 차의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면, 큰 사고가 일어났을 거다.
그 순간이 나를 멈춰 세웠다.
자전거와 함께 나쁜 생각도 멈추게 했다.
역주행하던 검은색 차의 운전자가 알아차렸든 그렇지 않든 그는 자신은 물론, 동승자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다. 그 순간은 무사히 넘겼지만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가능성을 남겼다.
나쁜 생각을 멈추고, 어쩌면 눈 앞에서 벌어졌을지 모를 사고의 생각이 지나간 후에도 시선은 검은색 차를 좇았다. 차는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우체국 옆에 멈췄다. 아마도 그 검은색 차를 운전한 사람은 이 길이 일방통행인 걸 충분히 알 수 있을만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운전에 자신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이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자신이 조심하지 않아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사고가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알 수는 없다.
오늘 재밌는 말을 배웠다.
"그레이색이야."
주택가, 일방통행 골목길을 빠르게 역주행하면서 대문을 나서는 사람을 향해 당당히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말이다.
아,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레이색이야'라는 말을 떠올리는 건 나쁜 생각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서 풀어버리기 전까지는 마음에 응어리로 남은 걸 없애버리기가 힘들었다.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하루가 짧은 줄 알면서 나쁜 생각을 끄적이는 이유다.
앞으로 되도록 주기적으로 나쁜 생각을 쓰려고 한다.
재밌는 나쁜 표현 제보도 받는다.
골목길을 걸을 때, 샛길을 나설 때, 대문을 나갈 때, 길을 걸을 때.
항상 안전을 먼저 생각하자.
나쁜 생각이 이렇게 어렵다.
비 오는 날, 잔뜩 흐린 하늘처럼 마음이 찌푸려질 때, 그 분노를 유발한 자를 향해서 이렇게 외쳐보자.
"그레이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