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책이 있습니다
책방을 준비하기 전.
"언젠가 책방을 열거야."
포부를 품고 살던 날들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책방을 시작하고 거의 1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아무리 많이 팔릴 책이라고 해도, 스스로가 읽고 싶지 않은 책은 팔지 말자는 거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확신하거나 장담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변하고, 나 역시 변할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소망한다.
스스로 읽어보고 이 부분, 이런 면에서 추천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취향이 다른 사람이라면 저런 부분에서는 나와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해줄 수 있기를.
책방을 하기 전과 후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팔고 싶은 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첫째로, 한 번만 읽고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달, 몇 년 후에라도 다시 읽고 싶어 지는 책을 팔고 싶다.
인간은 지극히 현재를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현재란 과거를 부정하거나 미래와 선을 긋는 게 아니라 과거의 모든 경험과 생각, 우연한 사건과 그 사건들에 대한 태도가 만든 결과물이다. 현재를 사는 인간은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결정한다.
책의 내용, 이야기의 관점, 메시지의 해석도 같은 과정을 통한다. 결국 현재가 과거가 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날이 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 이야기를 대하는 자신의 마음,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상상 가능한, 책을 읽은 후의 결말이 열려 있는 책을 팔고 싶다.
둘째로, 둘 이상만 모이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을 팔고 싶다.
저마다의 현재를 사는 인간은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사고하고 해석한다. 같은 이야기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현재의 다른 인간과의 만남은 또 다른 생각의 차원으로 통하는 문 역할을 한다. 책을 읽는 목적과 책의 효용에서 '타인에 대한 인식'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종이 위 문장 형태가 아니라 자신과 동일하게 살아 숨 쉬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해석을 하는 존재와 조우하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는 책 말이다.
셋째로, 내일의 나를 구축하는 책을 팔고 싶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고 떠올린 "나는 구축하며 죽고 싶다."는 문장의 다른 형태다. 책의 흥미,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도 중요한 요소지만 사라지지 않는 한 단어를 남기는 책을 발견하고 파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구사하는 문장, 사용하는 단어는 생각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약하면 사람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집합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스스로를 좋은 책으로 만드는, 좋은 이야기로 이끄는 책을 팔고 싶다.
많이 팔려면 더 많이 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늘 아쉽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팔기 힘든 책이 참 많다. 그중에서 가장 팔기 힘들다고 느끼는 책을 하나 꼽자면, 그건 이런 책이다.
읽어보지 않았다는 건 제목을 모른다거나 들어본 적 없다거나, 목차를 보지 못했다거나, 줄거리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서 스스로에게 어떤 부분에 부합하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리며,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어떤 점에서 염려가 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처음 책방을 여는 상상을 하던 시점에 '읽어본 책'만 팔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큐레이션 도서 정기구독 서비스를 담당하던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다 읽어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이 책을 추천했을 때 만족했다면 그래도 크게 연연해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거친 피드백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자신 있게 권하지 못할 책을 파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던 시절이다.
정말 믿을만하다고 느끼는 작가, 좋아서 추천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오히려 두근거리며 팔 정도다. 팔면서 '나도 읽어봐야지'하는 생각을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만큼은 아니지만 팔기 힘든 책이 있다.
마음에 가시처럼 까실까실한 앙금을 남긴 책은 왠지 팔기 힘들다. 취향의 문제일 때가 많고, 민감성의 감도에 따라 무덤덤하거나 알려지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는 부분이지만 모를 때와 다르게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좋은 점을 부각한다.
"문장이 정말 좋죠."
"시선이나 생각의 관점이 새로워요!"
"앞으로 다른 작품도 기대되는 작가예요."
만약 '작품이 좋다'는 말없이 위와 같은 표현만 있다면 그런 의미다.
책방인데 팔지 않는 책이 있다.
사실, 많다.
처음에는 정말 거의 다 안 팔았다.
중고 책방이냐는 얘기에 '그렇다'고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가가책방은 중고 책방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첫째, 정말 팔면 안 될 것 같은 책은 팔지 않는다.
싫었던 책, 불쾌했던 책, 무례한 책은 갖고 있는 게 불편해도 팔 생각이 없다.
나에게 불쾌했던 책이 책방을 거쳐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때, 나쁜 경험이 되풀이되는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세상과 사람들을 속이는 책도 팔지 않는다. 예를 들면 포리스트 카터의 책이다. 그는 KKK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면서 신분을 세탁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또 다른 희생자들에게 상처를 줬다. 사람들이 그의 책을 집어 들 때마다 내가 아는 그 얘기를 해준다. 진실을 알면 슬퍼질 겁니다.
둘째, 절판된 책은 팔지 않는다.
다시 구하기 힘든 책은 팔기 어렵다.
지금도 많이 양보하고 있다.
더 말해 무엇할까.
늦은 오후 손님이 책을 보는 사이 잠깐 짬을 내서 쓰기 시작한 글이 이만큼 길어졌다.
손님은 갔고, 이야기도 끝낼 때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에 갑자기 끝내기로 한다.
아무튼, 그런 책이 있다.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