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의미 깊다.
지인이 등단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좋은 일이고 또 잘 어울린다는 거였다.
작가, 문학인. 다시 생각해봐도 참 잘 어울리는 옷이다.
코로나 이후 일 년. 세상은 격변했다.
누군가는 어서 이 상황이 끝나고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겠지만 그 바람은 헛된 꿈이기 쉽다. 일 년 동안 너무 멀리 왔고, 너무 많은 게 달라졌다. 시간의 틈은 옷이나 가죽과 달라서 이어 붙이거나 메우기가 곤란하다. 그렇게 벌어진 시간이 꼬박 일 년이라면 과거, 예전의 우리로 돌아가기보다 지금 이후의 우리를 꿈꾸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엄격해지자면 비겁하게, 관대하자면 어쩔 수 없다며 상황에 따라 삶 속 일부는 팍팍하고, 일부는 느슨하게 만들어 버렸다. 유난히 느슨해져서 게을러져 버린 영역에 쓰기가 들어간다. 한 때 쓰는 삶을 꿈꾸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해버렸다.
마지막 글을 쓰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지인의 등단 소식을 접했다.
세상이 멈춰버린 듯 보이는 지금도 누군가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실감하기 어려운 진실과 우연히 마주한 기분이었다.
꾸준히 써온 편이다.
쓴 글이 작품이 되지는 못해도, 꾸준한 기록은 되는 수준이었다. 꾸준함이 정말 꾸준해서 쓰기와 읽기에서의 꾸준함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한 날도 있다. 그러나 모두 과거의 과거 일이다. 책을 추천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추천할 책을 찾는 일이 고통스럽더니,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는 책 읽기가 멀어졌다. 그나마 독서모임이 있어서 체면치레를 했을 뿐인데, 지금은 모임도 하지 말라는 시대라는 이유로 더 멀어지고 말았다.
성실함과 진실함만큼 간단히 의미를 잃는 게 없다. 성실함은 한 번의 나태함으로 없던 게 되고, 진실함은 한 번의 거짓이면 오히려 진실함만 못하게 되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성실해도 의미 없고, 진실해도 전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하지만 세상에 의미 없는 건 별로 없다. 그 의미가 누구에게, 무엇에, 어디에 있는지가 다를 뿐, 거의 모든 노력에는 의미가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한 일 년 게을렀더라도 다시 쓰기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대지만 거의 모든 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투성이라 무의미하다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쓰기와 읽기를 거의 중단했던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부끄럽게도 어느 정도는 포기했던 게 분명하다. 계속해도 별 의미 없다는 생각과 계속해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들이닥치는 일상을 살아냈던 게 분명하다.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게으른 삶을 물려줄 수는 있어도 게으르게 살았던 삶을 들려주고 싶지는 않다.
"계속했던 무언가가 여기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
사람은 변한다.
보통의 사람이 어느 날 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고, 요리사가 된다.
물론 그 모든 '됨'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꾸준함은 세상은 몰라도 자신만은 배신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스스로의 꾸준함을 잘 알고 있을 이들에게.
나를 포함한 꾸준히 하려는 모두에게 올해, 앞으로의 나날이 하루하루 의미 깊기를.
지인은 등단했고, 아기는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됐다.
하루하루가 정말 의미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