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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08. 2021

깨진 쌀독을 주웠는데 골동품이었다.

언제나 반전이 있는 공주 원도심 라이프

지난 화요일 종종 밥을 사 먹을 때면 지나는 길을 가다 쌀독을 발견했다. 순간 이걸 가져가면 좋을까 그냥 버려두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재질을 확인할 겸 발로 툭툭 차 봤다. 뭔가 단단한 게 플라스틱은 아닌 게 확실했다. 

 갈등이 됐다. 필요한 건 아닌데, 당장 뭐에 쓸지 떠오르지도 않는데, 가뜩이나 어수선한 공간에 이걸 가져가는 게 옳은 걸까. 이 쌀독을 버린 누군가도 필요가 없어서 버렸을 텐데, 귀한 것이거나 쓸모가 있었다면 이렇게 덩그러니 놓여있을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뭔가를 주워갈지 아니면 그만둘지를 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지나간 후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있다면 가져가기로 하는 거다. 뭔가 일이 있어 그 길을 가던 것이기에 일단 가장 쉬운 선택을 하고 지나쳐왔다. 

 

 두 시간쯤 후, 그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쌀독은 거기 있었고, 유예했던 선택, 운명이 이끄는 대로 들고 돌아왔다. 

 "뚜껑이나 열어서 우산꽂이 같은 걸로라도 써야지." 그런 낭만적인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동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깨진 쌀독을 겟."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뭔가 반응이 돌아올 법한 사건이었는데, 늘 있는 일이라 그랬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약간 실망했었는데 다음 날 셋 중 하나에게 들어보니 그들도 'The 쌀독'을 봤다고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발로 차며 쌀독을 버렸네라고 하며 웃었다고 전해줬다. 그러려니 했다. 그야말로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난 오늘, 쓸모없는 쌀독에 쓸모를 만들기 위해 닫혀있는 뚜껑을 열기로 했다. 그리고 반전이 시작됐다.

 

 뚜껑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아무리 돌려보려고 해도 돌아가지 않았다. 요지부동. 딱 그 표현이 어울리는 상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쌀독이 이렇게 꽉 닫히지?" 이런 생각을 했다. 진상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았던가 돌아보게 될 생각. 

 결국 이 뚜껑을 살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순간과 마주했다.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쓸모 있는 건 항아리지 뚜껑이 아니니까. 뚜껑을 깨뜨리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깨려니 산산이 부수기엔 아깝다. 왠지, 살살 깨뜨리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십 수 분 후에는 '뚜껑을 깬다'는 선택에 얼마쯤 후회를 하게 될 거라는 것도 모르고, 살살 깨던 뚜껑을 절반쯤 깨뜨려 마침내 떼어낼 수 있었다.

 뚜껑을 열고 안을 보니 뭔가 들어있었다. 풀 조각 같은, 잎과 줄기가 섞인 듯 보이는 오래된 탓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풀떼기들.  

말라서 비틀어진 풀떼기인 줄 알았다

 현대식으로 생각해서 뚜껑을 돌려서 여는 것인 줄 알고 열심히 돌려보려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뚜껑은 몸통과 붙어있었다. 그야말로 '밀봉'한 상태였던 거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단단히 봉인했던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을 떠올리던 순간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숫자가 있었다. 

 "이걸 왜 지금 발견한 걸까."

십육 년 봉

십육 년(十六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 글자를 알아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봉(封).

틀림없이 그 글자였다. 

봉인.

뭘 봉인한 걸까?

소름, 설마 내가 상상하는 그것?

심지어 글자색 빨강!


우린 셋이서 호들갑을 떨었다. 

한 사람은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두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은 그걸 발로 찬 기억이 있다고 했다. 나는 비슷한 상상을 했었던 걸 애써 감추며 냉정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종이가 연결되어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반쯤 깨뜨린 뚜껑을 종이에 맞춰 끼워봤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글자가 있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반전이 시작됐다.

대청미 아니고 광

대청광0십육년봉(大淸光0十六年封) 

뭔가 그것이 아닐까 싶은 문구였다.

덧붙이자면 처음 쌀독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세 번째 한 자를 쌀 미(米)자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쌀독이 아닌 듯 보이기에 다시 유심히 살펴보니 빛 광(光)자였던 거다. 

 전혀 맥락은 없지만 대청광0이라고 하면 뭔가 연호가 아닐까 싶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반전에는 역사 공부가 있다. 공주 원도심 라이프가 이렇게 파란만장, 예측불허다.

대청광십육년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나온 연호가 청나라의 광서라는 연호다. 조선시대 고종 27년,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제 11대 황제 광서제의 연호가 바로 광서다. 

 대청이라는 건 대 청나라라는 수식이었고 광서는 광서제 때라는 의미였으며 16년은 1890년이었다. 한 마디로 이 항아리는 차 항아리고, 광서 16년인 1890년 이전에 만들어져 1890년에 봉인됐다는 거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을 공포에 떨고 있을 이들에게 서둘러 전했다.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비현실적인데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데 현실적인 답이었다. 

"2016년 같은데"

잠깐 2016년이 아닐까 생각하던 순간도 있다. 하지만 찾아본 결과를 보고 그런 의심은 버렸다. 검색 결과 중에 같은 해에 봉인한 차 항아리 사진을 올려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아까워서 열 수 없다고 적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뒤에 진실이 밝혀졌다. 

깨진 쌀독이라며 우산꽂이 같은 걸로 쓸 생각으로 가져온 쓰레기가 대청광서십육년, 1890년에 봉인한 차를 담았던 골동품 항아리였던 거다. 

 뚜껑을 와장창 깨버린 게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원래도 깨져있긴 했지만 그렇게 심하게 깨지진 않았었건만.


 항아리에 얽힌 미스터리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이 항아리를 버린 사람은 자신이 뭘 버렸는지 알고 있을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고, 풀고 싶지 않은 미스터리다.


 일상적인 현실을 계속 살았을 뿐인데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것저것 주워다 가가책방을 만들 때부터 누군가 버린 물건이나 재료를 모으는 건 일종의 습관이자 생활이 되어 버렸다. 신기한 건 그렇게 주워온 물건들이 종종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나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 만나게 한다는 거다. 


 대표적 예가 가가책방의 풍금이고, 이 보이차 항아리는 역대급 반전 스토리 덩어리가 됐다.


 지인의 말처럼 공주는 역사문화도시다.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길바닥에 뒹구는걸 주민이 발로 차고, 누군가는 주워오고, 주워오고 보니 우연히 알게 되는데 사실은 1890년 이전 물건인 도시.

 이것저것 줍다 보니 이제 별걸 다 주워온 셈이 됐다.


 이 모든 상황, 결말이 참 초현실적이다.

어쩌다 깨진 쌀독을 줍고, 쌀독 뚜껑을 깨서 항아리라도 쓰려던 과정에서 우연히 연결지은 글자를 검색하게 되고, 검색 결과에서 130년 전 중국 청나라 왕조의 연호를 소환하고, 그 해가 고종 27년 1890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걸 버린 동네 주민이 그 사실을 알고 버렸을까를 궁금해하는 상황.


 정말 재밌다.


원도심 라이프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든 그렇지만 삶은 그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누군가는 가치 없어 버리는 걸 누군가는 가치를 발견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조금 느리고, 더디며, 시행착오와 후회와도 자주 마주치지만 다른 세상, 다른 삶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을 흥미진진한 일상이 무한히 펼쳐지기도 하는 공간.


 그곳이 바로, 가가책방이 자리 잡은 공주 원도심이다.


여기까지가 지나는 길에 우연히 깨진 쌀독을 주웠는데 알고 보니 골동품 항아리였던 사건의 간략한 전말이다. 

혹 실물이 궁금하면 설 지난 후에 아래 주소로 찾아오면 볼 수 있다.

 공주시 감영길 3.


주워서 다행이다.

일단 줍는 게 이득.

제대로 큰 웃음 웃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함께 해준 이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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