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맞는 음식과 취향에 맞는 커피만 있어도 살만하다
공주 원도심에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질문을 던져놓고 보니 당황스러울 상황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일요일에 찾아가면 반드시 실패하는 소문난 식당들. 덕분에 일요일이면 곰골 식당이라는 생선구이집이 더 붐빈다.
사진은 진흥각이라는 짬뽕집을 그린 건데 이 집은 난이도가 유난히 높다. 일요일만 쉬는 식당이지만 영업시간이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로 고작 3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공주에 살기 시작하던 때도 난도가 높던 이 식당은 지난해 두 차례 방송에 등장하면서 이제는 거의 먹기 힘든 식당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그런 식당을 그렸던 걸까. 당연히 이유가 있다.
공주에 살기 시작하던 무렵의 나는 매일 한가했다. 오전에 원도심을 어슬렁이며 누가 내놓은 가구는 없는지, 쓸만한 목재는 없는지, 혹은 철거 소식은 없는지 둘러보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줍고 모으고 받은 모든 것이 가가책방이 됐으니 놀기만 한 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한가롭게 지내는 동안 자주 진흥각에 갔다. 혼자 갈 때도 있고, 봉황재 사장님과 갈 때도 있고, 그랬다.
언제였을까, 봉황재 사장님이 주문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반드시 제공되는 메뉴를 알려줬다. 그중 하나가 진흥각의 짬뽕밥이다. 진흥각은 짬뽕집으로 짬뽕과 짜장, 탕수육 이렇게 세 가지 메뉴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깔끔한 국물 맛이 다른 짬뽕과 구별된다. 한 번은 짬뽕을 먹고 아마 그다음부터는 짬뽕밥을 먹었던 듯한데, 면만 먹기에는 뭔가 든든함이 덜했던 이유가 컸다.
봉황재 사장님 말에 의하면 단골에게는 특별한 짬뽕밥이 제공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짬뽕밥을 주문했는데, 그게 정말 특별했다. 내가 주문한 짬뽕밥에는 밥밖에 없었지만 그의 짬뽕밥에는 면이 들어있었다.
면과 밥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짬뽕밥.
특별했다. 특혜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적한 곳에서 지내다 보면 별 것 아닌 게 좋아 보이게 되는 법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자주 찾아가면 단골이 되어 면이 추가된 짬뽕밥을 먹을 수 있게 될까. 진흥각에 들러 짬뽕밥을 주문할 때면 종종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어느 날, 그 상상이 현실이 됐다. 마치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듯 생각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그날도 별생각 없이 늘 주문하던 짬뽕밥을 시켰다. 정확하게는 이제는 사장님이 알아보고 '밥?'하고 물었다. '네.'하고 자리에 앉았다.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편한 거다. 작은 도시, 좁은 지역의 장점은 취향이 확고한 이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와 서비스를 획득하는 과정이 간결해진다는 거다. 번거로움이 덜어진달까. 물론, 번거롭고 싶어서 굳이 작은 도시에 머무는 이에게는 이런 간결함이 되려 불편할 수도 있겠다. 아차. 또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자.
평소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모양새였다. 차이를 알아차린 건 밥을 뜨기 위해 수저를 짬뽕밥 깊숙이 넣었을 때다. 평소와 달리 수저가 수월히 올라오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보태 들어 올린 수저에는 탱글탱글한 밥알 말고 길고 허연 게 보였다. 면이었다. 어라, 이것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면 추가된 짬뽕밥이로구나.
별 일 아닌데, 괜히 기뻤다. 몹시 기분이 좋았다.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단골로 인정받아서였는지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국물까지 비웠다. 왠지 평소보다 더 맛있는 느낌.
사실 진흥각은 방문하는 시간 대에 따라 맛에 편차가 있다. 지금은 손님이 더 늘어서 전과 다를 수 있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구하듯 빨리 가는 사람이 더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늘 오픈 시간에 맞춰 가려고 하던 때도 있다. 처음 맛 본 면 추가된 짬뽕밥의 맛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기분 좋은 맛이랄까.
그날 이후로는 찾아갈 때마다 짬뽕밥을 주문했고, 늘 면이 추가되어 나왔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짬뽕밥과 비교해보니 양이 더 많았다. 당연한 게 같은 양의 짬뽕밥에 면이 추가되었으니 많을 수밖에. 허기진 날에 더 만족스러운 진흥각의 비밀 메뉴, 면 추가된 짬뽕밥. 그 특별한 메뉴를 흔하게 먹을 수 있던 그때가 참 좋았다.
방송 출연 이후 한 동안 진흥각에는 변화가 이어졌다. 11시에 입장하던 게 10시 30분부터 입장하게 됐고, 2시면 마지막이던 주문이 조금 더 연장되기도 했다.
공주에 산다고 얘기하면 지인들은 흔하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공주의 대표 음식이 뭐야?"
공주에 살면서 이보다 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드물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건 후일담이다. 처음에는 골똘히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알밤 막걸리뿐이었다. 줄여서 알밤 정도? 그런데 알밤은 음식이 아니다. 특산물이라고 하기엔 또 전국 어디나 흔한 게 밤이라 애매했다. 결국 '칼국수'와 '짬뽕'이 대답에 등장하게 되는 이유다. 짬뽕은 의외로 유명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짬뽕집이 3개 이상일 정도고, 칼국수 집은 더 많다. 결국 질문의 결론은 공주에 밀가루가 많이 공급되던 시기가 있던 모양이라는 데 이르는데, 그게 참 여전히 애매하다.
공주에 살기 전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고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반죽동 247 이야기까지 함께 적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진흥각 얘기가 길어져서 나눠서 써야겠다.
지금 진흥각은 외관이 많이 달라졌다. 더 세련되고 멋들어지게 변했는데 그 변화가 싫지는 않지만 예전 모습을 그려둔 걸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전 모습일 때 단골이 되고, 단골에게만 제공되는 비밀 메뉴를 맛본 사람으로서 예전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다.
유명해져서 장사가 잘 되고 손님이 많아서 오래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하면 기뻤다가, 이제는 전처럼 한가롭지 못해서 벌써 몇 달째 찾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걸 느낀다. 시간을 조금 내더라도 대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메뉴가 나오기까지 기다림이 길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작은 도시에 몇 안 되는 단골집을 가진 책방 주인이 작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종종 마음먹으면 언제든 면이 추가된 짬뽕밥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삶이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으니까.
공주 원도심을 찾게 되거든, 그 걸음 한 시간이 일요일이 아니고, 아직 오후 2시 이전이며,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진흥각에 한 번 들러주길 바란다. 줄이 길면 어쩔 수 없지만 운이 좋다면 깔끔한 국물 맛이 남다른 짬뽕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