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짬뽕밥을 먹고, 내일 반죽동 커피를 마신다
오랜만에 마주한 진흥각 단골용 짬뽕밥이 반가워 사진을 찍었더니, 맛없어 보이게 찍었다고 핀잔 듣는 사람. 나다.
오늘 하려던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랜만에 진흥각 단골손님용 짬뽕밥을 먹은 얘기를 좀 해야겠다.
어제 쓴 진흥각 히든 메뉴, 단골을 위한 면 추가 짬뽕밥 이야기를 읽은 아내는 오랜만에 진흥각 짬뽕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오전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 무렵 슬쩍 진흥각 주변을 염탐했다. 줄 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매장 안에는 손님이 많은지.
운이 좋으려고 그랬는지, 시간이 일렀던 덕인지 아직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얼른 연락을 넣었다.
"갑시다."
어제 쓴 글에 등장한 봉황재 사장님이 생각나 청해봤지만 이미 식사를 했노라며 짬뽕은 다음 달에, 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만 가기로 했다.
며칠 따뜻하더니 오늘따라 찬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다. 아마 그래서 더 사람이 적었겠지. 아무튼 운수 좋은 날이다. 아기 덕분에 일인 탕수육도 서비스로 받았다. 정말 은혜로운 오늘이다.
보통은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인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잘 먹고 잘 사는 게 별 거 아니다. 마음먹고 찾아간 짬뽕집에서 작은 탕수육 하나를 덤으로 받을 수 있다면 잘 사는 거 아닐까. 뭐, 속 편한 얘기다.
오늘 드로잉 주인공은 반죽동 247이라는 카페다. 아마도 가장 여러 번, 여러 방향에서 그린 공간일 거다. 여러 번 그렸다는 건 그만큼 자주 들른다는 반증이다. 또한 애착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오늘은 그런 공간, 카페 반죽동 247 커피로스터스 얘기를 해야겠다.
커피는 결국 취향이다. 어떤 원두가, 무슨 커피가 맛있는 가는 다 자기 입맛과 취향에 달린 문제다. 몇 년 전까지는 커피를 전혀 모르고 지내다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 취향을 획득했다. 나에게는 맛있는 커피가 있고 맛없는 커피가 있는데, 맛있는 커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까다로운 건 아닐 텐데, 취향이라는 게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닌 탓이다. 취향이란 조금 더 복합적인 지향점이다. 그러니까 커피가 맛있으려면 관계, 일종의 소통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였던 거다.
그런 은근히 까다로운 커피 취향을 가진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곳이 바로 반죽동 247이다. 2018년 7월 처음 찾아간 이후로 오늘까지 한 달에 스무 번 미만으로 찾아간 적이 없다. 사실은 휴무일 인 월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빼놓지 않고 간다고 하는 게 맞다. 시쳇말로 죽돌이였던 시절도 길었고 말이다.
입담 좋은 사장과 그 입담보다 좋은 커피 맛. 얘기를 들어보면 그라인더에 갈고 있는 게 원두가 아니라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진짜 진심으로 커피를 하는 사람이 바로 반죽동 황 사장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커피를 하는 이가 운영하는 카페의 커피가 맛이 없을 수 없다.
이렇게 이 공간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가 단지 커피가 맛있어서는 아니다. 2019년 1월은 처음 공주에 정착하던 시기고, 연고도 지인도 없던 공주 원도심에서 유일하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반죽동 247 카페였던 시기를 보낸 경험이 크다. 지금의 가가책방이 존재할 수 있던 여러 이유 중 두 가지가 공간과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하나가 봉황재고 둘이 반죽동 247이다. 그만큼 소중한 공간이라는 거다.
더위를 식히고, 추위를 녹이며, 심심함과 무료함을 달래고, 부족한 정보를 채워줬으며, 필요한 사람과 연결해주는 사랑방 같은 곳. 그래서 손님이 찾아오면 늘 커피는 반죽동 247이다.
반죽동 247이라는 이름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내가 그랬다. 물어봤더니 지금 카페가 있는 곳이 반죽동 247 번지라고 한다. 가 아니라, 반죽동 247번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죽동 247이라고 지었다고. 반죽동이라는 지명은 반죽이 나는 곳이라는 의미란다. 반죽은 전설의 새, 봉황이 먹는 대나무라는데, 이름만 들었지 반죽동에서 반죽을 보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비슷하게 오죽헌의 대나무가 오죽인데, 오죽은 종종 본다. 반죽도 봉황처럼 전설의 대나무인 건가. 농담이다.
예전에는 종종 늦게까지 앉아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내가 책방을 그만두고 공주를 떠나면 자기도 (공주에서) 카페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곤 했다. 그만큼 공주라는 도시가 토박이 청년들에게 답답하고, 갑갑하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우리가 있어서 예전보다 조금 더 즐거운 일이 늘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게 참 잘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된다.
일요일에는 밥 먹을 곳이 없고, 월요일에는 커피 마실 곳이 없는 공주 원도심이라 잘 먹고 잘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고 농담을 늘어놓곤 하지만 여기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도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체질이거나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촌에서 나고 자란 나라서 작은 도시의 분위기를 덜 갑갑하게 느끼고, 시설이나 공간을 즐겨 찾는 사람도 아니라 무엇이 없어 불편함을 느끼는 일도 적고, 서울에서 충분히 부대끼며 지냈기에 사람이 많은 곳이 그립지도 않고, 특별히 맛집을 늘 찾아다니는 편도 아니기에.
그런 나에게 행운처럼 취향과 입맛에 맞는 완벽한 카페까지 보유한 공간.
거창하게 말하면 공주 원도심은 그런 공간이다.
느닷없지만 내일은 화요일, 반죽동 247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잘 먹고 잘 사는 거 별 거 아니다. 때로는 좋아하는 카페의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한 날도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