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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19. 2021

어느 브런치 고인물의 수기.

삶이 그렇듯 브런치의 시간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2015년 초, 다음카카오에서 브런치라는 작가 채널을 연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 당시에는 블로그를 더 열심히 하던 시기라 서비스 오픈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다 직장이 바뀌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채널이 더 필요해졌다. 

 그 필요에 의해 작가 신청했던 게 브런치 글쓰기의 시작이다. 주변 블로거들 몇몇이 신청했다 낙방했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너무 당연하게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써왔던 게시글들이 있는데, 내가 떨어지겠어? 대략 그런 방심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언제 작가 신청을 했는지, 승인에 얼마가 걸렸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당시에 받은 메일을 찾아봤다. 신청은 2015년 9월 5일 오후고, 승인이 2015년 9월 7일 오후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신청자가 많지 않아서였는지 심사 기간이 짧았다. 

 '작가'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 후로 오늘까지 비교적 꾸준히 쓰고 있다.


 한동안 잘 썼다 싶은 글이거나 아니거나, 기준이 뭔지 확실하지 않은 글들이 에디터의 추천으로 브런치 메인에 오르내렸다. 그때마다 기분이 우쭐해져서 진짜 작가라도 된 듯했다. 하지만 그 영광이 길지는 않았다. 활동을 시작하고 2년쯤 지났을까, 그때부터는 아무리 마음에 흡족한 글을 써서 올려도 한 편 당 조회수 200을 넘기는 일이 드물어졌다. 


 옹졸하게도 원망하는 마음이 싹트는 날도 있었다. 왜 내 글이 이렇게까지 무시당해야 하는가? 혹시 내 계정을 차단한 건 아닌가 하는 음모론도 함께 자라났다. 하지만 브런치의 운영방침이 그랬던 거라는 걸 나중에는 인정하게 됐다. 브런치는 엄연히 플랫폼이고, 플랫폼은 계속 새로운 자원, 인재가 모여야만 기능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새로운 작가와 색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새롭게 유입된 작가들에 주목하고 그들의 의욕을 북돋아주는 방법을 택하는 게 당연한 거였다.


 연차로는 7년 차쯤 되어서야 비로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고인물의 삶이란 게 다 비슷비슷하다. 계속 남기 위해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방식을 만들며, 자기 길을 새기는 게 고인물 아니던가. 


 이런 다 알게 될 얘기를 끄적이는 이유는 옛날 생각이 나서다. 고인물의 일상이란 게 다 옛날, 좋았던 시절뿐 아니라 힘들었던 시절, 그만두고 싶었던 시절, 그럼에도 계속해나갈 이유를 찾던 시절을 회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니까다.


 브런치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 며칠 만에 에디터가 픽하거나 메인에 올라 조회수와 구독자 수 증가를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이들의 흥분된 글과 이제 서서히 고인물로 접어들면서 좀처럼 주목해주지 않는 브런치와 독자들에 실망한 이들의 자포자기가 교차하는 모습을 본다. 나 역시 한 때, 그렇게 흥에 겨웠고 비슷하게 떠나려 했으므로 그 기분을 조금은 이해한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건 전적으로 작가 본인의 몫이다. 누군가, 주목하지 않아도, 인정받지 못해도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꾸준히 쓰면서 종종 어딘가에 게시됐는지 조회수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며 작은 위안을 느끼는 브런치 생활도 있고, 더 주목받을만하고, 더 가치 있는 글을 쓴다는 자신감으로 또 다른 플랫폼을 찾아갈 수도 있다. 

 종종 보이는 그 양갈래 중 어디쯤에 있을 법한 작가의 글 제목이 상념을 자극해 이런 글까지 쓰게 됐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떠날 테지만 어디에 가든 어디서 쓰든 꾸준히 쓸 수만 있으면 별로 문제 될 건 없겠다.


 지금의 브런치가 지향하는 게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더 많은 브런치 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꾸준하며 역량 있는 작가들을 새로 발견하거나, 기존 작가들의 진입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달 중순부터 시작한다는 밀리와의 콜라보처럼 작가 플랫폼과 출판 플랫폼의 연결을 넘어 유통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건지.

  고인물인 나는 그 방향을 어느 쪽으로든 움직이려 하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할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고여있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의 방식으로 나의 생각을 쓸 수 있을 만큼 써 내려갈 뿐이니까.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면 기뻐하자. 마음껏 즐기자.

조금 실망스럽더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자. 에디터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의 글이 나쁘거나, 못난 건 아닐 수 있으니까. 어쩌면 누군가는 당신의 다음 글이 발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떠나기를 고민하는 중이더라도 작가의 자격은 남겨두자.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어쩌면 떠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한 1년쯤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게 되면 그때 자동으로 작가 자격을 잃게 되니 조급할 필요는 없겠다. 

 이미 떠나온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당신은 아마도 어디에 있든 계속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어딘가에 기록하며 누군가가 읽을 수 있도록 올려두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고 선택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공평하게 지나간다.


 물이 고여있다고 해서 다 썩는 건 아니다. 어떤 물은 더 값지고 귀한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고인물은 목마른 누군가의 생명연장을 돕기도 하고, 또 어떤 고인물에는 물고기가 노닐거나 험한 데 사는 나무의 깊은 뿌리가 닿기도 한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누군가에게는 당신의 글이, 일상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쓴 당신, 참 좋다.


모두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당신을 본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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