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황홀할지 모를 그 세계에도 그늘이 있으리라.
"내 글에는 여유가 별로 없다."
이렇게 써놓고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한참 들여다보다 이렇게 고쳐본다.
"내 글은 여유가 없다."
이게 아닌데 싶다. 오히려 처음 느낌에서 더 멀어진 기분이다.
"내 글은 별로 여유롭지 못하다."
너무 빙 둘러 얘기하는 듯해서 싫어진다.
홧김에 이렇게 써버리고 만다.
"내 글은 별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떤 유명한 작가들은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이르기를 '글쓰기의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스스로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 쓸 수밖에 없었기에 쓴다는 거다. 그렇다고 그 감옥생활이 괴롭기만 한 건 아닌지 누군가는 '황홀한 글감옥'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솔직히는 도무지 황홀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작가의 세계란 게 그러려니 해야지 어쩔 수 있나.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솟아난다. "나는 어디쯤에 갇혀 있거나 가두려고 하는 걸까."
아, 이런 생각이 뜬금없이 솟아날 정도로 갇혀 있으니 글에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구나.
아무튼 확실한 건 감옥보다는 병동 가까운 곳에서 쓰고 있을 거라는 거다.
나의 글쓰기는 기획이나 개요보다 충동에 좌우된다. 계획도 없고 개요도 없이 첫 문장을 적고는 이어 쓰는 식인데, 덕분에 분량이나 내용이 중구난방이 되고 만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일 때가 흔하다는 거다. 그게 또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라 거부감 없이 내내 쓰고 있으니, 갇힐 곳은 치료를 위한 병동인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예전에는 글쓰기가 하지 못하는 말,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는 발언대라고 믿기도 했다. 하지만 발언대에는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자리가 발언대일 수 있으니까. 현실은 좀 다르다. 혼잣말에 그치는 글이 너무 많다. 점점 더 많아질 것만 같아서 쓰지 않고 묻어 두는 일이 잦았다. 너무 담아둬서 오히려 지치려고 할 때 하는 일이 쓰기가 됐다.
지금은 글쓰기가 도피처가 됐다. 여러 의미의, 많은 것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세계.
사람이 급하게 도망치다 보면 앞뒤 재고 따질 겨를이 없는 법이다. 거의 필사적으로 휘갈기는 셈이라 여유나 웃음을 챙겨 넣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다.
자연스럽게 일상과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일기를 쓰라고 하면 그날의 것도 아닌 날씨와 먹었거나 말았거나 상관없는 음식 이야기나 써서 지면을 채우던 게 나다. 그나마도 며칠에 걸쳐 쓰면 다행이고 하루나 이틀 만에 벼락 치듯 몰아 적던 게 나다. 디테일함이나 여유 같은 걸 학습할 겨를이 없었다. 괜히 글에 여유가 없는 게 아니다.
하얗고 무한한 도피처에 숨어 이렇게 아무 소리나 적고 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야 도망쳐 있을 수 있을 테니까. 박제하듯 기록되어 있을 테니 이 속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없으니 안심하고 도망칠 수 있다. 비로소 편안하다.
조금은 여유를 아는 사람으로 쓰는 걸 시도해야겠다. 혹시 아나? 소설이나 영화처럼 글로 썼더니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지. 아직은 어떻게 여유롭게 쓸 수 있을지 까마득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우선은 탓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 연습부터. 문제의 해결이 최선인 건 아니니까.
천천히, 종종 심호흡을 하면서, 한 걸음씩, 마음 가까이.
"휴우."
"흐으읍, (쉬고), 후우"
갑자기 두 호흡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계속할만하다.
계속하는 게,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꾸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