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거기다 '좀'이니 '꽤'니, '제법' 같은 걸 덧붙이고 그러니.
별로 쓸모 있는 글은 아닐 테니 어지간히 한가하지 않다면 읽지 말기를 권하고 시작함.
일상에서나 글을 쓸 때나 최상급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
"와, 굉장하다."거나 "정말 대단한데!" 하는 식의 표현도 드물다. 옛날 얘기에 빗대면 칭찬이나 환호에 있어서는 스쿠루지만큼이나 인색한 셈이다. 그 말 한마디 더 한다고 손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 한 마디 쓰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
사실 최상급은커녕 사족 없는 칭찬이나 찬사, 환호를 보내는 일도 드물다. 그 예로 지금 쓰는 글 첫째 줄을 보자. "일상에서나 글을 쓸 때나 최상급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에 그 흔적이 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썼다면 조금 과장하는 느낌이 들더라도 '일상에서나 글을 쓸 때나 최상급을 쓰지 않는다'라고 해도 무리한 문장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혹시라도 너무 호들갑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일상에서나 글을 쓸 때나 최상급은 잘 안 쓰게 된다'거나 '일상에서나 글을 쓸 때나 최상급은 거의 안 쓴다'로 적어도 괜찮았을 거다. 그런데 굳이 빙글빙글 돌려서 '좀처럼'을 붙이고, 안 쓴다가 아닌 쓰지 않는다고 적어서 글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하는 거다.
피곤해지기 시작한 것, 조금 더 피곤해질 때까지 생각을 해보기로 하자.
무언가를 접했을 때 좋은 느낌을 받고 선뜻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나라면 좋다 대신에 '괜찮다'나 '꽤 괜찮다'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좋다와 괜찮다가 동등한,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다와 괜찮다를 구분하던 순간에 머리가 아파왔을 거다.
뉘앙스의 문제인데, 좋다는 괜찮다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확한 호감의 표현이라고 본다. 좋다가 단호한 느낌이라면 괜찮다는 조금 더 많은 걸 고려하기 위해 유보하는 느낌이다.
같은 원리로 '괜찮다'는 '꽤 괜찮다'보다 명확한 표현이다. 얼핏 '꽤 괜찮다'라고 하는 말이 '괜찮다'보다 더 낫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꽤 괜찮다'는 건 '덜 괜찮다' 혹은 '나쁘지는 않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꽤 괜찮다'는 표현은 '따져봤더니 괜찮은 듯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나 해석에 모두가 공감할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해석하고 있다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하는 중이니 말이다.
'꽤 괜찮다'와 비슷한 느낌으로 '제법 괜찮다'나 '좀 괜찮다'가 있다. 그냥 좋다고 말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서로 기분도 더 좋아질 텐데, 말이 많은 편이라 참 피곤하게 만드는 듯 해 미안할 때가 있다. 의외로 어려운 문제다. 좀처럼 그 벽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쪼개고 나누고 구분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일까.
만약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꽤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 혹은 그들의 조건들에 호불호의 점수를 매기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정당화나 합리화를 위함일 수도 있고, 결정을 앞두고 선택에 도움이 될만한 요인을 조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꽤 괜찮은 게 정도 이상으로 많다면 언젠가 결정장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불호', '거절', '싫음'의 표현도 그렇지만 좋음의 표현도 명확하고 단순한 게 서로에게 좋다.
빙글빙글 돌고 돌아서 결론은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해도 좋겠다는 거다.
나는 쓰는 게 좋다. 읽는 사람이 와서 '넌 왜 그렇게 피곤하게 쓰니'라고 말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쓰는 방식이 좋다. 미묘한 것을 더 작고 잘게 쪼개서 조금 더 또렷이 인식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짜릿하다. 세상이 무관심한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좋다. 오히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기에 더 들여다보게 되는 부분도 많다.
비록 앞으로도 선뜻 최상급을 쓱쓱 써내지는 못하겠지만 좋은 건 그냥 좋다고 말하고 써나가고 싶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고 쓰기 위해 조금 들여다보고 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일단 조건 없이 좋다고 말하고 시작할 수 있게 된 것만도 큰 발전이기에 인내할 수 있겠지.
새삼스럽지만 좋은 시작이다.
계속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