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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r 15. 2021

브런치유입 키워드로 독자를 읽는다.

가끔 무거운 마음에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오랜 시간 읽는 사람으로만 살다가 읽으면서 쓰는 사람이 된 지도 오래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느낀 감동, 공감, 슬픔, 기쁨들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부추기지만 동시에 늘 마음 한 켠에는 두려움 하나를 품고 산다.

 그 두려움이란 '내 글의 쓸모'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것인데,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면서 이겨내기도 힘들다고 느끼게 되는 건 누가 읽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왜 읽게 됐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존재하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독자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독자를 알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브런치에는 독자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숨어 있다. 하나가 유입 경로고, 또 하나가 유입 키워드다. 더 직접적으로는 댓글이 있지만 내 글에는 좀처럼 댓글이 달리지 않으므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방문자 수보다 어떤 키워드로 방문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재밌는 키워드도 있고, 의도한 바에 부합하는 예측 가능한 키워드도 있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키워드도 있다(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면 종종 키워드를 들여다보기를).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기는 하지만 키워드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한 거니까. 하지만 이번 달 들어 마음에 걸리는 키워드가 연달아 눈에 들어왔다.

 '힘들다'는 세 글자 앞에서 마음이 멈춰버렸던 거다.


 보통 내 브런치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어떤 소설의 결말이나, 그 작가의 이야기, 개의 체온이나 차가운 혀 혹은 복숭아 나무 묘목에 관한 것들이다. 누가 숙제라도 내줬는지 한 작품을 조금씩 다른 검색어로 찾아 들어오기도 한다. 다 예측 가능한 보통의 유입어다. 하지만 드물게 개인의 감정이나 상황이 투영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검색 유입 키워드

'마음의 문이 닫힌 자녀', '깨진 항아리는 가져오는 게 아닌가', '글 읽기가 느려여' 같은.

이런 키워드들은 생각이 깊어지게 하지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상황인지 대체로 예측 가능해서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키워드는 이런 거다.

강상중 아들.

 강상중 작가는 재일교포 2세다. <고민하는 힘> 다음에 출간된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강상중 자신의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강상중 작가의 아들은 소세키 식으로 표현하면 '폭력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다. 어떤 이유에서 강상중 아들을 검색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홀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다.


3월 8일이다.

 '힘들다'로 검색해 다녀간 사람이 있다.

힘들다


3월 11일에는 '먹고사는 게 힘드네요'로 검색해 누군가 다녀간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먹고사는 건 어쩌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3월 10일에 누군가 '사는 게 너무 힘들다'로 검색해 다녀갔다.

3월 13일에도 '사는 게 너무 힘들다'가 있다.

 '너무'라는 두 글자가 마음을 멈춰 세웠다.


 힘들 수는 있다. 보통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요즘 같은 때라면 공감하고 서로 위로를 나누기도 할 마음이다. 하지만 '너무'라는 말은 왠지 무겁다.

 

 그 누군가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로 검색해서 찾아와서는 어떤 글을 읽었던 걸까.

여기저기에 '사는 게 너무 힘들다'로 검색해보고 검색 결과에서 내가 쓴 글을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뭘 읽고, 무슨 마음으로 창을 닫았던 걸까.

 괜히 더 마음이 무거워진 이유는 그렇게 찾아 읽은 글에 별 것 아닌 얘기, 힘을 빼놓는 응원, 시시한 소설이 담겼을까 봐 겁이 나서다.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에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되게 했던 이들이 남긴 글의 몇 분의 일이라도 닮아야 할 텐데 하는 무력함 때문이다.


 사는 게 너무 힘들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여기에서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잖아요'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이 몹시 무력하게 느껴지는 거다. 이렇게 한 편의 글을 더 쓰는 게 최선이라 서다.


 글을 써서 좋은 날이 더 많다.

재밌는 키워드가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글에 담은 의도나 시도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날도 흔하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고, 힘이 된다면 더 좋겠다. 하지만 보통은 누구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쓰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쓰겠고, 꾸준히 적겠지만 아직 '누구를 위해 씁니다' 같은 거창한 마음을 품기에는 소심하고 미흡하기에.

 

 쓰는 사람의 마음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읽으며 또 부족하나마 계속해나가겠다고 마음먹을 뿐이다.

힘든 사람들아, 너무 힘든 사람들아, 사는 게 너무 힘든 사람들아, 오늘도 잘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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