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한다고공감하는 게 아니고 공감한다고동의하는것도 아니다.
나는 좀 유별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다. 예컨대 '보통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흔히 하고, '꼭 그렇게 해야겠느냐'는 얘기를 듣게 하는 행동을 한다. 한 마디로 '그러려니 지나치는 인간이 아니라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인간'이라는 거다. 더 간단히는 과한 인간이랄까.
많은 일에 과하게, 다른 표현으로 예민하게 굴다 보니 보통의 경우라면 삐딱해지는 일이 많다. 가장 가까운 예가 앞서 쓴 글, <달까지 가자>의 감상문이다. 결국 가볍게 읽었으니 누군가는 공감할 이야기구나 하고 넘어가는 게 쉬운 길인데 굳이 삐딱하게 보고 삐뚤한 생각에 골몰한다. 그게 나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늘 동의하는 건 아니다. 동의와 공감은 전혀 다른 거니까. 가장 흔한 사례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다.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일이잖은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내게는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버릇이 있다.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심심한 위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하지만 단지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공감해주는 일, 그것이 문제 해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을지라도 함께, 같은 마음자리에 머물러 주는 일, 그게 내게는 왜 그리 힘이 들었을까.
대부분의 경우 내게 충고하는 사람들은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종종 '싸패(사이코패스)'냐거나 '공감능력 부족'을 지적받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기분일지, 무슨 생각을 할지 알면서도 입술을 앙다물고, 어금니를 꽉 깨무는 심정으로 현실적인 얘기를 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때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공감능력 부족이라고 거듭 지적받기도 하는데,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지적이다. 공감 단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이후의 대처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표현과 뉘앙스를 예민하게 구분해서 쓰려고 하는 편이다. 때로 경솔하게 써버린 표현에 깊이 절망하고 사과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도 그런 경향에 기인한다.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다. 쓰고 있자니 구질구질해지는 기분인데, 그래서 평소에는 변명하거나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 왔다. 그래서 더 공감능력 부재자처럼 보였을까.
아무튼 그런 맥락에서 공감 단계에 머무르는 현실 관조 소설을 읽는 게 괴롭다. 그래서 별 말 않기 위해 되도록 읽지 않고 지낸다. 가까운 시대와 세계의 이야기보다 까마득하거나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소설이 더 편한 이유도 같다. 세상에 괴로워지려고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추측성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고, 괴롭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는 존재이니까.
굳이 다 아는 얘기, 공감과 동의가 다르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유는 혹시라도 종종 혼동해서 쓰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공감한다면서 왜 동의하지 않느냐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느냐는 말을 듣는 상황은 얼마나 괴로운가. 그 반대의 상황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그러니 혹여라도 혼동해서 쓰지 말자는 의미다.
공감한다고 해서 동의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폭력이 되기 쉽고, 동의한다고 해서 공감까지 요구하는 건 선을 넘는 행위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궁지에 몰고 싶을 때 공감과 동의를 혼동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과 사람을 최소한만큼이라도 내 뜻대로 휘두르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진정한 공감 부재자나 사이코패스는 동의와 공감을 두고 일어나는 다툼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속내는 감추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동의와 공감을 두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충돌하는 모습에 소리 없이 웃는 게 그들이다. 자신이든 진실이든지를 감추는 이들, 감추려는 자들이 범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건 동의하지만 공감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공감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사람이 아니라 감추려는 자들이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진실은 반드시 떠오를 거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