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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02. 2021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애쓴다.

파우스트와 데미안

지난 2년을 반성하는 중이다. 단지 마음으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생각하고 내년의 나에게 다음 이야기를 넘겨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나는 비난한다. 스스로의 비겁을 모질고도 심하게 비난한다. 비난하고 타일러서 결국 다시 생각하고, 계속 쓰게 만들었을 거다. 내 안에서 솟아나 흘러넘쳐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생각의 단편들에 책임을 느꼈을 거다. 

 3년 전의 나라면 분명 그래 마땅하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마음이 이끌렸을 거다. 실천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지난 2년을 반성하는 건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솟아나서 흘러넘쳐 사라진 건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것. 정말 의미 있는 생각의 조각이라면 다른 조각을 만나 새로운 모습 혹은 더 커진 모습으로 그 존재를 다시 드러낼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이건 희망과는 조금 다른, 그저 불확실한 가능성에 걸어보는 믿음이지만 꾸준히 애쓰다 보면 허황되지 않은 것이 된다.


 지금 하는 반성의 주제는 핑계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핑곗거리가 생겨났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거나, 바쁜 일이 있다거나, 어쩔 수 없다거나 하는 흔한 얘기다. 그래서 반성한다.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 스스로 자신의 본질이라 말하던 생활을 그쳤던 건 극단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돌볼 수 있을 리 없다. 감당할 수 있을 리 없고, 나누어 짊어지거나 온전히 즐길 수 있을 리 없다. 무엇보다 오래 즐거울 수 없다.


 지난 2년은 살아오며 기억하는 시간 중 가장 만족스럽고, 황홀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신에게 핑계를 내놓을 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자고 얘기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에는 자연히 삶의 한 자리를 회복할 것이라 믿으며. 그런 작은 나를 반성한다. 

 그러나 작았으므로 더 만족할 수 있었다. 포부가 컸다면, 야망이 컸다면, 꿈이나 이상이 현실보다 더 중요했다면 지금의 나를 보며 초조해하고 분노하며 절망하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 작은 나로 살기로 마음먹은 적은 없지만 치열하게 살지 않는 나는 애초에 최선이나 전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질적으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일에 진저리를 치는, 적당히 게으른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인 셈이다.


 그런 나지만 소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파우스트>의 파우스트 박사가 사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는다. 그들의 삶이 마음에 맞는다거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뭔가 오래 죽어있던 인간성을 깨우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고,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라는 얘기는 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문장에도 힘이 있다면 이 문장, 이 소설들은 힘이 센 셈이다.


 오래 쉬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힘, 굳어있게 하고 뻑뻑하게 만드는 힘보다 조금 더 큰 힘을 가하는 거다. 너무 무리하게 힘을 주면 부러지거나 부서질 수 있으므로 적당히 윤활유도 부어주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예열을 해야 하는 거다. 사람으로 얘기하면 재활의 시간이다. 생각을 떠올리고 다듬고 전환하고 착안하던 기능들을 하나씩 되살리고 회복시키는 거다. 

 무엇을 쓸 수 있든, 무엇도 쓰기 어렵든 하루에 몇 자라도 계속 써보기. 내가 아는 부작용이 없는 가장 바람직한 회복의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몰라서 시도할 생각도 들지 않으므로,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필사니 뭐니 번거로운 취미를 새로 가져볼 마음도 없으므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말들, 생각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일로 시작하려는 거다.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어낸 이가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결론이 없다. 결론이 없다는 게 결론이 될 수 있다면 결론이 없다는 게 결론인 이야기라는 얘기다. 이제 조금 말장난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됐나 보다. 얼토당토않은 동어 반복을 실행하는 걸 보니.


 되도록 하루가 가기 전에 한 편의 생각 더미를 쏟아내는 일. 당분간은 그 일을 해볼 생각이다. 일주일이나, 이주일, 가능하다면 12월 한 달 동안 매일, 길거나 짧은 혼잣말을 다만 기록해보기. 그거면 반성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내일의 이야기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이만.


의미는 크지만 나와는 무관한 온전히 그들의 몫인 행복의 증거물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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