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책방은 늘 닫혀있지만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2019년 6월 가가책방을 열고 2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0년 6월 무인책방 운영을 시작하고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갔고요. 2년 남짓한 시간은 방명록 다섯 권을 채웠고, 이제는 여섯 번째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4 행시 쓰기로 시작한 엽서 남기기가 이제는 가가책방을 찾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이유가 됐고, 그 이유를 증명하듯 책방 거의 모든 공간에 엽서가 붙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뭉클하고, 감동하는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한 공간. 처음 가가책방을 준비하면서 ‘이랬으면 좋겠다’며 품었던 바람들이 매 순간 더 나은 모습으로 실현되는 걸 봅니다. 올여름은 그런 여름이었습니다.
책방에 남긴 흔적에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는 오래전입니다.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첫 번째 무인책방 손님의 편지부터, 언제 남겼는지 모를 누군가의 메시지, 안부 혹은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볼 때마다 응답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런저런 이유와 바쁘다는 핑계가 있겠지만 결국 오늘까지 미루게 된 건 때가 되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제는 때가 된 거겠죠. 거의 말랐던 우물이 자꾸 물을 퍼내는 힘으로 점점 더 차오르듯이 거의 잊어버린 기억이라 오히려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2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무엇을 이루기에도, 어떤 것을 증명하기에도 모자라다고요. 하물며 언제든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도시의 작고 작은 책방이 마치 무언가를 이뤄낸 것처럼 굴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묘한 자격지심도 있었나 봅니다.
사실 어떤 증명이나 무엇을 이뤄내는 일 따위는 나와도, 가가책방과도 아무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애초에 무엇을 증명하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을 한다거나 유명해진다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머리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데 가가책방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얘기였는데, 그 얘기에서 책방을 향한 애착이 느껴져서 뭉클했습니다.
그 뭉클함이 어쩌면 가가책방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공간인지 모른다는 생각,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음에도 공간과 의도를 알아차리고 충분히 느껴준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 답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이끌림, 남겨진 이야기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혹은 답하는 일이 일단락되는 순간에는 무엇인가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 모든 생각이나 이끌림이나 기대가 아무 의미도 실체도 없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끝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겠다는 믿음이 됐습니다. 적도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어디의 태풍을 만든다는 나비효과 같은 거겠지만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가 나와 가가책방에 의미가 되었듯이, 사람들 이야기에 답하는 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봅니다.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 어려운 시대에 작고도 사소한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어디에나 있다는 ‘가가호호’의 의미는 드러내고 우리들의 집이 그렇듯 유일하고도 따뜻하며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슬쩍 감춰 가가책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만든 지 한 달 남짓 됐을 때 이미 사람들이 오래된 공간이라고 느낄 만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 한참 무더운 7월이나 8월 여름에 다녀간 사람들이 ‘더운데 따뜻하다’고 이야기하는 공간. 책을 팔지 않던 시절에는 ‘이러다 금방 망하겠다’며 제발 뭐라도 사가겠다는 사람과 만나던 공간. 다음에는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다시 오겠다고, 잘한 것도 없는데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사람들이 흔한 공간. 나에게만 소중한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책방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잔뜩 숨었다 가는 공간.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가가책방에 남긴 사람들의 흔적에 답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신 이야기에 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가가책방은 언제나 닫혀 있지만 항상 열려 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