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Oct 29. 2021

마을이 내게 오는 일

안녕, 나의 한옥집

 


작은 도시에 산다는 건 그만큼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녀볼 기회가 많아진다는 거다.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갈 수 없다거나,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거나, 길을 잃거나 헤맬 걱정도 덜하다. 그중에서도 공주는 더 특별한데 수백 년이나 확장되지 않고 지금의 규모를 유지해온 원도심이라 낯선 골목조차 거칠기보다 상냥하게 느껴지고 몇 번만 걸어 봐도 금세 익숙해져서다. 종종 여행으로 혹은 저마다의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과 원도심을 돌아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좋아하는 사람들, 신기해하는 사람들,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조금 더 이 작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다. 그럴 때면 오늘 조금 더 마을이 나와 가까워진 듯 느낀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살고 있음을 더 생생히 느낀다.

 그렇게 매일매일 마을은 내게 더 가까이, 깊숙이 들어온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 소문을 통해, 누군가 남긴 흔적을 통해, 드물게는 책을 통해서. 책을 통하는 일이 드문 이유는 굳이 책을 찾아보거나 읽으려는 시도의 필요를 못 느껴서다. 우연히 손에 잡히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면 영영 책을 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랬는데, 이번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책이 먼저 찾아온 덕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지점에서 마을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경험을 하게 된 거다.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SNS 메시지로 종종 도서 입고 문의가 오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며 무심히 메시지를 읽는데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는 서울의 그 어느 큰 서점도 아닌, 가가책방이랍니다.”  

 과거에는 공주 중동 도립병원, 직전까지는 공주의료원이라 불리던 곳 뒤에 자리한 한옥집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했다. 워낙 정신없던 시기라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한옥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후 잠시 잊어버렸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무인책방 이용문의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받고 보니 책을 낸 출판사 대표님이다. 출간을 기념해 작가의 책 속 한옥집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며, 공주 원도심에 있는 책방들도 들러볼 예정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가가 책방은 빼놓지 않을 거라며 일정을 물었다. 먼저 답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 마음이 고마웠다. 입고도 요청하고 약속도 잡았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은 사실 흔하지는 않아도 드물지도 않을 일이다. 책을 낸 작가가 공주 원도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공간이 책 속 무대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약속대로 대표님이 다녀가고 책이 남은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오른쪽 공터가 공주의료원이 있던 자리

마을과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일, 사건은 그 이후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한옥집을 찾아갔는데, 역시나 처음 예감대로 바로 그 집이다. 

 공주의료원 건물이 헐리기 전부터 최근까지 산책 삼아서, 일이 있어서, 그냥, 여러 이유로 그 근처를 지나다녔다. 처음 지나던 날 담장 안에서 들려온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오랜 시간 그 집은 사나운 개가 짖는 낡은 집으로 기억에 남았다. 누가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누가 살았었는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집 대문을 지나 큰길로 나가기까지 한결같은 쓸쓸하고 황량한 분위기가 오늘날의 공주 원도심의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첫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 한옥과 주변 지역이 어떤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한 권의 책,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바꿔놓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를 아는 것처럼 느꼈고, 그 한옥집이 궁금해졌으며, 새삼 뒤쪽에 있었다는 공주 목관아와 주변 가게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았는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작가가 기억하는 30년 전의 공주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겹쳐보며 자꾸 과거로, 옛날로 시간을 돌렸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살아가는 마을이 조금 더 넓어진 듯 느꼈다. 단순히 위치나 겉모양을 아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떠올리면 왠지 반갑고, 친근해져서 따뜻한 마음이 되는 거다.      


 삶이 이렇다. 사람과 이어지는 순간이 문득 찾아오고, 마을이 내게 오고, 삶과 마음의 저변이 넓어진다. 그런 과정에서 단순히 사는 지역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공간이 되고, 조금은 외로워서 둥둥 떠다니는 듯했던 이방인의 마음이 조금씩 대지에 뿌리내리듯 든든해지는 거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와 언젠가 공주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나눈다. 

언젠가, 만나서 이야기 나눌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고. 

만나 얘기 나눌 날을 나 역시 기다린다고 답한다.

볕 좋은 가을 날 공주목욕탕 마당에 널려있는 수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