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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05. 2021

책을 팔아 하루, 추억 팔아 10년

가능성과 유효기간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좀 쉬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가던 공주에 자리를 잡고 책방을 열게 되면서 듣게 된 유난히 빈도 높은 질문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왜 공주였느냐"고 다른 하나가 "잘 되느냐"다. 지금은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련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질문 앞에서 한참을 궁리해야 했다.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궁리하고, 정말 솔직한 대답이 무엇인지 매번 속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지금의 단답형 대답은 대략 이렇다.

 "왜 공주였느냐"에는 "공주가 좋아서요"라고 답하고 "잘 되느냐"에는 "늘 그렇죠 뭐, 하하" 이렇게.

둘 다 오해하기 딱 좋은 애매한 대답이지만 질문자들 대부분은 이 대답에 납득하고 지나쳐갔다. 그야말로 서로 그러려니 하며 속에 품은 자신의 예상 답안을 채점해보는 거다. 아마도 "정답!" 이런 신호가 울리지 않았을까. 첫째 질문에 "공주가 좋아서요"라고 답하면 거의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공주가 왜 좋으냐"다. '왜 공주'에서 '공주가 왜'로 바뀐 것뿐이지만 이 대답도 처음에는 수월히 내놓지 못했다. 나만의 감각, 나만의 만족스러운 지점,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경험을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질문에도 단답형으로 답할 수 있다. "조용해서요."라는 식으로. 그러면 이번에도 질문자는 역시 예의 그 이해했다는, 공감한다는 태도와 함께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거다. 그게 물리적 길이든 심리적 길이든 자기의 길을. 

 

 공주에 책방을 열고 자리를 잡게 된 건 공주가 좋아서고, 그 좋아하는 부분 중에 조용하다는 점도 있지만 사실 충분한 대답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사람들이 기대하는 혹은 예상하는 대답을(그것이 거짓은 아니기에) 내놓는 게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의 감정이나 경험을 납득 가능한 수준까지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상상하고, 그럴 것이라 믿는 그 믿음을 적당히 충족시켜주는 길을 택하게 되는 거다. 


 오늘 쓰는 글의 제목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이 있다. 그저 궁금해서, 걱정돼서, 확인 차. 저마다 다른 의도, 이유로 던지겠지만 "잘 되느냐"는 질문에는 "늘 그렇죠, 뭐."하고 웃음을 웃는 게 최선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웃음을 쓴웃음으로 생각하든, 만족하는 웃음으로 생각하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렇게 생각한 후 마음이 불편해진 날이 없었으므로 스스로도 만족하고 있고.


 사실 책을 파는 일은 늘 그렇다. 하하. 

"정말 책이 너무 잘 팔려서 너무 잘 됩니다."라고 말하는 책방이 몇이나 될까. 푸념이나 원망, 아쉬움은 없다. 이미 시작하기 전에 알고 있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으므로 처음 했던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책만'이 아니라 '다른 일로'라고 생계의 포부를 밝혔었다. 오히려 예상보다는 책이 더 많이 팔리고 있어서 나름 만족하는 중이라고 하면 너무 소박한 걸까. 


 소박한 게 맞기는 하다. 정확한 셈은 아니지만 기분상 보통의 날을 기준으로 책을 하루 팔면 그날 하루 커피 한 잔, 잘 되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정도니까. 책을 팔아서는 겨우 하루를 살까 말까 하는 셈이다. 대신이라고 하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가가책방을 다녀간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팔고 있는 추억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거뜬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쌓였다. 회상하고 곱씹으면서 이야깃거리로 삼으면 10년이 아니라 20년도 되풀이할 수 있으리라. 물론 가까이서 늘 듣는 사람들은 귀에 못이 박히겠다고 타박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책을 파는 일, 소도시 작은 책방이 책을 파는 일로 얻을 수 있는 수익, 소득의 가능성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추억의 유효기간은 더 길고, 강렬하다. 책방에는 물리, 수치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 마음의 가능성이 고여있다. 누군가는 더 깊이 들어가서 더 강렬하게 느끼고, 누군가는 입구 언저리에 머물러서 덜 감동적일 뿐이다. 


 "늘 그렇죠, 뭐."라는 대답에는 숨은 의미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를 설명하면 '다녀간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는 안겠지만 나 자신으로서는 오늘 새롭게 더해진 추억 하나를 발견한 일 하나로도 충분히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의미를 발견한다'는 거다. 늘 발견하고 있지만 그런 날에는 더 오래,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가가책방을 다녀간 사람들 대부분은 알지 못하겠지만 혹, 얘기해줄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들이 남기고 가는 위로, 쉼, 편안함, 따뜻함이 가가책방을 존재하게 하는 힘입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공간을 만든 사람의 소망, 바람을 충분하고 넘칠 만큼 완전하게 알아차려주는 사람을 만날 때면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의 기분이 된다고. 


 가가책방은 책을 열심히 파는 책방이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추억만큼은 그 어떤 책방보다 열심히 팔고 있다는 얘기를 한 번은 해두고 싶었다. 책방지기가 판 건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 추억이라서 어느 날에는 자신이 사간 책에서 책방을 추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 머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오래, 이 자리를 지켜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잘 팔린 추억의 예시
늘 추억하게 되는 터줏대감들의 시선_오른쪽 가까운 순서로 '치즈', '담미', '메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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