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고맙습니다, 시간을 들여 호의와 선의에 답해갈게요.
2주쯤 전이다. 며칠 전 아내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가서 주문을 하려고 보니 '해당 상품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사이트에서라도 구매해보려고 찾아봤지만 없었다. '있었지만 없었다'가 이런 걸까. 더 높은 가격대를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뭐, 어쩔 수 없지.'싶은 생각이 떠올랐고 아내에게 전에 보내준 링크, 이제는 살 수가 없다는 고백을 했다.
고백.
대수롭지 않은 고백에 아내는 잠시 '허'하는 소리라도 내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그때 샀어야지'. 당연히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때 샀더라면 지금쯤 도착해서 치장을 시작했을 테니, 게으름 혹은 무심함이 불러온 작은, 사소한 실패였다. 하지만 그렇게 물러날 수는 없었기에, '그게 그렇게 중요해?'하고 되물었다. 중요하단다. 특히 상점, 매장을 운영한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 중 하나란다.
알아차렸겠지만, 이게 다 트리 때문이다. 크리스마스트리.
트리 같은 거 없어도 나의 연말은 충분히 평온하고 만족스럽고 따뜻할 수 있건만,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캐럴만 들어도 흥은 나건만.
친근하게 주고받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영 어색하기만 하다. '연말 잘 보내세요'가 더 편하고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산타와는 인연이 없었고, 처음 산타를 알았을 때 이미 세상에 진짜 산타는 없다는 사실, 적어도 너희 집에 너희의 선물을 두고 간 사람들이 산타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는 걸 확신했다. 지금 이 문장을 보고 비로소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허허허~' 하며 웃는 사람 좋은 퉁퉁하고 빨간 옷을 입고, 루돌프를 타고 날아다니는 산타는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본 역사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성장 환경의 요인도 있지만 회의와 의구심을 먹고 성장한 청소년기 이후의 경험이 결정적이다. 그렇게 조금은 냉정하고 냉랭한, 겨울바람처럼 건조하고, 겨울 들판처럼 딱딱한 사람이 나다.
벌써 상당히 말을 알아듣게 된 아기에게 산타는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것도 그런 사람인 탓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어쩐지 아기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초록이며 반짝이는 빛이 무서운 모양인지 트리만 보면 피하곤 했다. 한 번의 예외가 있는데 트리에 온통 휘감긴 작은 전구가 초록을 가릴 만큼 밝게 빛나던 큰 트리를 볼 때만큼은 호기심이 생기는지 그 앞에서 포즈까지 취해 보였다. 빛은 좋아하지만 초록에 붉게, 황금빛으로 장식된 나무가 무서웠던 걸까.
유년의 어느 시절을 지나면서부터 명절이니 잔치니 하는 것에 관심이 식었다. 친척이 주는 용돈이나,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의미가 흐려져서라기보다 그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준비하고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들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어느 집에서는 여전히 때마다 듣게 될 '학업', '진로', '취업', '결혼', '자녀계획', '등등'의 이야기가 가장 흔히 들리는 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명절이나 가족이 흔히 모이는 큰 휴일이라 그랬을 거다.
못 노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남이 깔아준 방석, 세워준 무대는 늘 부담이 더 컸다. 나와 별 상관없는 기념할만한 날이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히 불편하다.
'뭐, 그런 걸 다 불편해하면서 살아? 그게 더 불편하겠다.'라고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싫으니까. 유독 그런 특별한 휴일에는 불편함을 참고 화목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더 갑갑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는 태어나 자라면서 한 번도 산타의 방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게 그런 경험의 부재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특별한 선물보다 평소의 호의와 선의가 더 가치 있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고 넘치는 호의와 선의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의 아기도 그 호의와 선의 속에서 건강히 자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상상과 낭만, 신비로운 동심이 산타의 존재 유무로 깨지거나 흐려지지 않는 거라면 아기가 산타를 꿈꾸거나 산타와 만나게 해 줄 예정은 없다.
크리스마스가 특별하다기보다 한 해 동안 함께하며 사랑과 호의, 선의를 나눠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는 시간이 특별해지는 연말을 맞이하고 보내야지. 거의 모든 것이 환상의 산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걸 아기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호의와 선의가 마르지 않도록 울리지 않고, 종종 우는 사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것이 산타를 모르고 아빠가 된 사람이 줄 수 있는 최선의 크리스마스 약속이다. 아기야, 고운아, 부경아, 메리 크리스마스.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