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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19. 2022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심고, 세우고, 쓰는가

곽재식 작가 특강에 다녀왔다. 정확히는 주최 측 인원으로 참석했는데 누구 못지않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테지만 오늘은 작가로서, 쓰는 일과 써온 일을 들려주었다. 그의 작가로서의 마음가짐, 태도는 몹시 진지하고 끈질긴 것이었다. 모두에게 멋질 수는 없겠지만 누구도 볼품없다 말할 수 없을만한 모습이어서 새삼 '이거구나'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얼마 전 첫 책을 출간한 친구 생각이 났다. 사람은 다 달라도, 쓰는 모습과 쓰기를 대하는 마음은 닮았다. 시대와 세대를 넘는 놀라운 유사성이다. 새삼스러운 듯 적는 지금의 내가 우스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세 살 아이는 열심히 블록을 쌓지만 그건 높이 쌓기 위한 게 아니라 다 쌓은 뒤 부수고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얼마 전까지 간신히 쌓던 블록에 제법 능숙해져서 수월히 쌓고 간단히 무너뜨리는데 쌓을 때 들인 노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주 개운하고 즐겁게 부수곤 한다. 더 잘 무너뜨리기 위해 산산조각 내기 위해 더 강하게 부딪히고 더 크게 휘두른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그렇다.


 쓰기도 다르지 않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크게 와닿은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것'이라는 부분이다. 쓰는 동안의 수고와 노력은 작지 않고, 겨우 쓰기를 마친 글이 늘 마음에 흡족한 건 아니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다 써낸 글은 가치가 있다. 확실한 아이디어를 기다리며 쓰기를 미루기보다 오히려 몇 편의 글을 쓰며 나쁜 습관을 발견하고 고쳐나갈 단서를 찾는다면 기쁜 일이다.


 엉뚱한 수고의 현장, 긴 노력의 무의미함과 마주할 때가 있다. 공든 탑의 무너짐이다. 탑을 쌓는다는 건 글을 쓰는 일과 닮았다. 한 장 한 장의 돌이 쌓여서 탑이 되는데 이 돌을 막 쌓아도 되는 게 아니라 균형을 맞춰야만 탑으로 설 수 있게 된다. 높은 탑일수록 균형을 조금만 잃어도 무너지는데 어떤 이들은 일부러, 심지어는 무심하게 그 탑들을 무너뜨린다. 공든 탑이라고 말하고 벽돌을 적었지만 사실 말하려는 건 베어낸 나무들 얘기다. 그래, 나무를 베어낸 사람들 얘기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유난히 요즘 들어 함부로 베어낸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이번에 발견한 건 50년도 넘은 벚나무와 그보다 더 오래된 향나무다. 건물이 헐리고 공터가 된 자리인데 그 터 가장자리에 남았던 나무들을 펜스를 설치한 후에 모두 베어버린 거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든지 가로수나 조경수를 다시 심게 될 텐데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없애고 시작하는 건 왜일까. 마치 오랜 시간을 들여 써오던 장편 소설을 결말에 가까워질 때쯤 태워버리거나 삭제하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행동의 이유는 뭘까. 창조하기 위해 파괴하는 거라면 새로 묘목을 심기 위해 고목을 베어내는 게 정당화되는 걸까.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장 의아하고 놀라운 지점이 큰 나무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눈에 띄는 사건들을 보면 큰 나무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한 결과라 어디서부터 시비를 걸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무너뜨리기 위해 짓고, 베어내기 위해 심고, 내쫓기 위해 초대하는 걸까. 그런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쓰기로 돌아오자.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쓰는 걸까, 누구를 위해 쓰는 걸까, 무엇을 하려고 쓰는 걸까, 무엇이 되려고 쓰는 걸까, 도대체 쓰기란 무엇일까.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가끔은 이제 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글로 남기기도 했다. 더 솔직할 것도 없이 그건 그저 떼쓰기에 불과한 칭얼거림이다. 왜 내 글에 반응하지 않느냐, 읽어보기는 한 것이냐, 왜 아무 말도 없느냐며 누군지도 모를, 존재하는지도 모를 독자에게 어리광을 부린 거다. 이렇게 쓰기도 부끄럽지만 그런 부끄러움을 견디며 계속 써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받아들이자. 


 함부로 베어낸 나무처럼 만들지 않기로 하자. 다만 그 자리에 심겨 오래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즐거움과 그늘이 되어주다가 누군가의 변덕으로 아무 죄 없이 베어 넘겨진 나무처럼 쓰기를 대하지 말자. 쓰는 동안 즐거웠고 써내서 행복함에 의미를 두자. 그러다 운이 닿아 무언가가 되어주기라도 하면 다만 순수하게 기뻐하자. 지금은 다만 쓰는 시간. 오늘 쓸 글을 마쳤으니 편안히 잠들자.


(구)공주시의료원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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