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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Oct 16. 2021

사과 하기가 참 어렵다

수다스러운 나날 1

 나는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 때는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보낸 날도 적지 않다. 요즘 말로 하면 '할많하않'인데, 얘기해도 별 의미 없다는 생각과 대화 자체를 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자의식 과잉이 만든 결과 중 하나였다. 말을 해도 문제, 말을 하지 않아도 문제라면 말하지 않는 걸 택했다. 구구절절이 변명하거나 설명하는 일이 혐오스러웠다. 차라리 오해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드물게 나타날 특별한 누군가는 나의 진심을 알아볼 거라고 믿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기적이 한 번은 일어날 거라고. 하지만 기적은 없었고, 시간은 흘렀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말이 많다. 수다쟁이, 잔소리쟁이, 말 많은 사람, 그런 사람. 그게 지금의 나다.


  돌아보면 그때도 늘 뭔가를 쓰려고 시도했었다. 지금은 손가락을 오그라들게 하는 말줄임과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온갖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비극의 주인공 같은 흔적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늘 시끄러워서 고요할 날이 없었다. 마음이 분주하고 소란해서 마음 밖이 조용해 보였던 게 아닐까 한다. 결국 수다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고 표현의 형태와 표출의 양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거다. 

 

 한 가지는 꿋꿋이 지키려고 해왔다. 사소한 일이건 부끄러운 일이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는 일들에는 확실히 사과하려고 애쓰는 일이다. 별 것 아니라고, 괜찮다고 해도 극구 자세한 정황과 내가 이해한 잘못의 지점들, 사과의 이유를 밝히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고, 그런 사과를 받는 게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졌을 테지만 그래도 사과를 완수하려고 했다.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 스스로의 마음에 앙금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정말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됐다면, 변하고 싶었다. 몇 번쯤 실수하고 같은 실수를 다시 몇 번쯤 되풀이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과하고 마음에 새기려고 시도했다. 결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금은 강박적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의식하고 달라지기 위해 애쓰면 사람은 분명 달라진다. 사소한 일이라도 확실히 사과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누구든 자신의 잘못을 거듭, 계속 반복하고 싶어 할 리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기에, 때때로 내 방식을 강요했다. 결국 잔소리가 늘었다. 소중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히 싫은 소리를 자꾸 하는 사람이 됐다. 나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고, 조금은 덜 인간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말을 듣는 일이 늘어갔다. 가끔 나도 그런 내가 싫어졌다.


 정치인을 보면 잘못을 인정하면 큰일이 나는 듯 교묘하게 회피하거나 부정한다. 기업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떻게 얼버무리거나 무시하려고 하다가 크게 혼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이들을 보기 힘든데 그건 아마 인정하는 것보다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계산에서 거나 정말 무시하는 마음으로 소위 '개돼지'를 대하듯 하기 때문일 거다. 어떻게든 지금만 넘기면 되는, 이미 지나가 버린, 다 끝난 일을 다시 언급해도 무의미하다는 얘기를 하며 앞으로의 발전적인 대화에 힘을 쏟자고 하는 것도 그렇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피해나 상처 받은 이들의 아픔이 해소되지도 않았는데 어디에 발전의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더 사과에 매달렸다. 사과하는 것,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자꾸 새겼다. 간단히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마음 쓰고 있던 잘못을 반복했을 때 마음 쓰지 않던 잘못을 한 것보다 큰 미안함과 깊은 아픔을 느낀다. 그 아픔이 나로 하여금 변해야 한다고,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독이는 힘이 됐다.


 많은 말을 하고, 잘못도 많이 하고, 사과도 많이 하면서 좋아진 게 적어도 하나는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는 걸 자꾸 경험하게 됐다는 거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전혀 부끄러울 게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인정하지 못하고 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변하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는 게 맞다. 많이 듣고, 늘 배우고, 책에서 자주 읽은 건데 그렇게 믿고 생각하기가 참 어렵다.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어렵게 느끼는 건 사람이라서라고 한다. 관계가 중요하고, 명예가 소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사과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과를 한다는 건 잘못했다는 거고, 잘못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거나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치기 어린 결론 같지만 어른이라고 다르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이라서 더 잃을 것과 잃고 싶지 않은 게 많기에 더 어려워하기도 한다. 알지만, 사과는 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몇 달, 많이 답답했다.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는 일상을 보내며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분명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쌓이고 있을 무엇들을 알고, 느끼면서도 해소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참, 그 잘못이 작지 않다. 그러니 사과할 수밖에.


 이 글의 말미에 덧붙여, 내게 사과받을 일이 있는 이는 부디 얘기해줬으면 한다. 사과받을 수 없는 사람들, 이미 오래전에 잊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게 마음에 남은 이들에게는 뭉뚱그린 사과나마 이 자리에 미안함을 담아둔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 말이 오늘은 필요했다. 그런 기분이었다. 


가가책방에 남은, 누군가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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