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럿 중 일단 하나
나는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글을 쉽게 쓰는 편도 못된다. 무엇에 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2, 3,000자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장담하곤 하지만 결과물에 만족하는 일은 또 드물다. 결국 쓰지 않으면 쓰지 않아서 답답하고, 쓰고 나서는 부족한 부분이 더 눈에 띄어서 갑갑해한다.
그럼에도 다시 쓰게 되는 건 쓰고 괴로워하는 게 쓰지 않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느껴서다. 완전한 기록은 아니어도 기억은 남을 테고, 남은 기억 덕에 어떤 일들은 조금 더 오래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게 되니까. 사람이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은 반드시 기억을 날려버리지만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은 기억을 또렷이 하기도 한다. 또 어떤 고통은 기억이 아니라 감정에 새겨진다. 그럼으로써 조금 더 오래, 강렬히 기억하게 되고 더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거다. 자주 만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두렵지 않은 건 나를 괴롭히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못한다. 받아들이거나 극복하거나 무시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학과 다르지 않다. 잊지 않기 위해 고통을 새기고, 새겨진 고통으로 오래, 더 많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거다. 고통과 두려움에 눈 돌리지 않기. 누군가는 더 좋은 방법도 많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아는 건, 잘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날부터 오늘까지 쓰고 또 적어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오늘에야 비로소 닿았다.
누군가는 글쓰기는 자신감이라고 혹은 솔직함이라고 하던데 자신 있게 무엇에 대해 쓰거나 솔직하게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쓰면 쓸수록 모르는 부분이 눈에 밟히고, 의문스럽거나 틀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커져가는 일이 흔하다. 그렇다고 나는 잘 모른다고 쓰면 무책임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 있게 쓸 때는 누가 뭐라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품고, 솔직하게 쓸 때는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독자가 없어도 계속 써나가겠다고 마음먹는 일이다. 자신감이든, 솔직함이든, 주목받지 못함이든 쓴다는 건 각오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각오하고 감내하고 참아내는 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의 하나다. 즐겁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는 것도 해보고 싶고, 그런 이야기를 잘 써내는 이들이 부러운 날도 많다. 그런데 못난 마음이 다른 사람들이 잘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만 움직인다. 이것도 일종의 병이라면 병인데 치료방법을 모르겠어서 일단은 계속하고 있다. 나중에라도 누군가 나타나 가르쳐주거나, 어떤 계기로 고쳐지거나 하면 그전에 적었던 거의 모든 글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마음껏 부끄러워해줄 자신이 있다.
글을 쓰는 나는 강한 사람이고 싶고, 많이 아는 사람이고 싶고, 현명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내가 아닌 것 같은 내가 글 속에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나와 다른 내가 마치 나처럼 새겨지는 일에 무감각해지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바라는 일,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일에 대해 쓴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 쓰는 사람들도 많다.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커다란 또 다른 마음, 더는 괴롭거나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마주하고 맞서서 투쟁하며 그 과정을 남기는 거다.
솔직하기가 참 어렵다. 오랜만에 마음을 뒤적이며 단어를 고르는데 도무지 쓸 만한 게 손에 잡히지 않아 고통스러웠다는 간단한 얘기를 하는데 이만큼이나 많은 문장이 필요했던 것만 봐도 알만한 일 아닌가. 솔직하기 위해 오래 참고 계속 써나간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