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면 작가의 세상도 변한다
7년 전이다.
2015년 6월, 100명의 작가와 시작했다는 브런치.
게임으로 이야기하면 클로즈 베타 시기였을 그때, 브런치에 나는 없었다. 론칭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때는 아직 네이버 블로그를 포기하지 못하던 시기라 오랜 시간 들여온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떨치지 못하고 작가 신청을 미루었다. 그러다 작가 신청을 한 게 그 해 9월.
블로그 이웃 중 누구는 떨어졌다고, 누구는 재신청을 해서 작가가 됐다고, 그런 얘기들이 오가던 시기다. 당시 나는 스스로 글 좀 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터라 자신 있게 신청했고, 너무 당연하게 작가가 됐다. 그래서였다. 한동안(사실은 몇 년 동안이나)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거나 뿌듯하지 않았고, '사실 아무나 작가가 되는 것 아니야?'라는 삐뚤어진 생각도 종종 품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2015년 브런치에는 지금은 없는 'beta'라는 문구가 붙어 다녔다. 게임으로 보면 오픈 베타시기였을텐데 그 시간이 한 해, 두 해가 넘어가면서 "이거 언제 베타를 떼어내는 거야?"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를 위한, 작가가 되기 위한, 작가가 되기 소망하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을 지향하는 브런치가 그때는 도무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상상력이 빈곤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e-book, 전자책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편이고, 책이란 결국 물성을 품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도서 계의 꼰대라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이 브런치에 그렇게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낼 줄 몰랐다.
브런치를 통해 출간 작가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때에야 작가 플랫폼 브런치가 그리던 큰 그림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그것이 본질이었음에도, 둔감하달까, 무감하달까, 그런 사람이었기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처음에는 블로그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때, 쓰고 싶은 만큼 써서 게시한다는 점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주제가 생기고, 주제에 맞춰 큐레이션 된 이야기가 노출될 수 있을 만큼 데이터가 쌓이면서 점점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게 밝혀졌다. 내가 블로그 이용을 그만두고 브런치에만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시점이 있는데 명확히 "이때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즈음에 내심 확신했던 듯하다. 글을 계속 써나가는 게 목적이라면 블로그도 좋지만 브런치가 더 뚜렷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브런치의 베타 기간에 내가 어떤 기여를 했을지는 상상하기도, 확인하기도 어렵다. 사실 솔직한 얘기로, 수만 명의 작가가 있고, 그들도 무수한 글을 쓰고, 작가와 독자와 소통하면서 베타 기간을 보냈을 것인데 감히 어디서 기여를 논하고, 지분을 따져본단 말인가. 처음 한두 해는 무섭게 성장하는 브런치 독자와 뷰수에 눈이 돌아갔던 게 맞다. 왠지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내 글이 더 주목받는 것 같고, 이대로 금방 유명해져서 진짜 작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종종 즐겼다. 다음 홈 페이지에 노출되고 글 하나를 수만 명이 봤을 때는 그 상상이 곧 이뤄질 것 같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뷰 많은 순으로 통계를 확인해보곤 하는데 당시의 어마어마한 뷰는 일종의 테스트 과정의 거품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댓글 하나 남지 않는 수만 명이 훑고 간 글이란 얼마나 쓸쓸한가. 지금은 한 사람이 보더라도 그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쓴다.
브런치 베타 기간이 내게 남긴 교훈이자 지금의 내가 글을 쓸 때 잊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다.
7년 만에 처음으로 브런치에서 결산 리포트를 내줬다. 최근 일 년은 활동도 관심도 뜸해서 그 전에도 그런 이벤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포트를 받아보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받아본 리포트에는 의외의 결과가 담겨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던 브런치 속 위치와 많이 달랐기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먼저, 7년 차라는 데서부터 당황하는 마음이 들었다. 벌써 7년이라니. 헤아려보니 만으로 6년 2개월이 넘는다. 정말 7년 차다. 이럴 수가.
글쓰기 전문이라거나, 다작 작가라는 건 그런대로 납득이 됐다. 글쓰기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최근 2, 3년 뜸하게 글을 썼음에도 600편 가까운 글을 발행했으니 다작인 셈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누적 뷰는 63.7만이라고 하는데 이 정보는 전혀 엉뚱한 정보로 이어졌다. 방문자 수인 66.8만에서 3.1만 적다는 건 단지 브런치 채널에 들어왔다가(아마도 실수 혹은 잘못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열어보는 일도 없이 그냥 나간 사람이 3.1만 명이라는 정보였다. 5%. 그 정도의 사람들이 그렇게 스쳐 지나갔구나.
그리고 이 뷰수의 절반 이상은 초반 2년 동안 누적된 결과다. FA에서 대박 난 스포츠 스타가 한두 해 선방하다 몇 년 동안 먹튀 논란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달까. 지금은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졌지만 한 동안 그런저런 이유로 브런치가 싫어지기도 했다. 왜 나만.
구독자와 라이킷이 상위 3%라는 건 정말 의외였다. 초라한 성적표에서 그나마 의미를 둘 수 있던 부분이자 위안이었달까. 비록 계속 글을 써나갈 셈이고, 누군가의 응답보다 스스로의 기록에 의미를 두는 글이 태반이지만 그럼에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때 더 즐겁게 글을 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버텨야 하는가 보다. 어느 날에는 볕이 들기도 할 테니까.
구독자는 어느 날에는 늘었다가 다른 날에는 줄기도 한다. 그러니까 여전히(기대에서든, 관심에서든, 잊어버린 것이든) 구독자로 남아서 종종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게 감사한다.
브런치에서 언제 베타가 떨어져 나갔는지 그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보니 온전한 브런치가 되어 있었으므로. 작가의 삶이란 것도 비슷한 게 아닐까. 그저 쓰는 사람이었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작가가 되어 살아가는. 한 번 작가로 살아낸 시간은 결코 되돌려 사라지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채워나가는 게 아닐까.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이다는 말이 있지만 작가는 고여있어도 썩지 않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닌가 한다. 마치 풍우를 기다리는 연못 속 이무기처럼. 이무기가 사는 연못은 흐르거나 바뀌지 않아도 썩지 않는다. 이무기 스스로가 그 물을 정화하고, 바꿔내는 일을 쉬지 않으므로.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그런 모습을 어느 한 구석에는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고인 마음이든, 누군가와의 고인 관계든, 세상의 고인 부분이든 그 이야기를 드러내고, 곱씹어, 새롭게 보여주는 사람.
지금의 나는 고작 나 스스로의 고인 마음과 꼬인 생각을 풀어내기에도 분주하지만, 언젠가 내 삶의 어느 순간에 베타가 떨어져 나가고 진짜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