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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04. 2021

쓰는 습관 만들려고 쓰고 습관이 되어서 또 쓰고.

습관적으로 쓰는 일

 열역학 제2법칙, 우리가 흔히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법칙에 의하면 세상은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혼란스러워지고 복잡해지고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은 무엇이든 습관을 만듦으로써 혼란 혹은 무질서에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주변과 상황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평소의 자신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조금은 더 자기답게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통한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삶, 생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습관이 대체해버린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보다 기계나 다름없을 것 같아 절망할 뻔했다. 20년 만에 돌아온다던가 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그렇지 않을까. 


 내게는 세 가지 정도 습관적으로 하고,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일이 있다. 하나는 읽는 일이다. 읽는 일은 사실 상당히 번거롭다. 손도 움직여야 하고, 눈도 움직여야 하고, 머리도 마냥 쉬어서는 읽는 행위가 의미를 잃는다. 인간이 본래 게으르다면, 그래서 기술을 개발해서 자신을 대체하게 하고, 체계를 만들어서 번거로움을 덜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만들어온 거라면(무엇을 위한 기술, 체계, 효율인가에 따라 다르겠으나), 직접 읽는 행위는 멀지 않은 날에 의미를 잃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직은 습관적으로 책을 사고, 읽는 개체가 상당히 남아있다지만 이미 출판산업이 사양산업에 들어선 건 30년도 전 얘기다(그때부터 서점, 출판업계에서는 유례없는 불황 혹은 위기라는 말을 흔히 썼다). 지금도 리뷰어나 북 튜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내용의 파악이나, 이해를 돕고, 심지어는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효율을 위해서라면 몇 시간씩 들여서 읽기보다 웬만한 건 먼저 읽고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게 낫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읽는 인간의 하나라서 여전히 읽고 있다. 


 둘은 쓰는 일이다. 처음부터 쓴 건 아니다. 쓰기 시작했을 때도 지금처럼 쓰지는 않았다. 그때는 무수한 말줄임표와 암시와 함의와 복선과(모두 나 혼자 생각하는) 감성뿜뿜의 활화산 같았다. 감추고 싶어지는 부끄러운 과거이면서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 상당 부분이 지금도 박제되어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글로 화를 풀었다. 혼잣말 대신 혼자 쓰는 날이 많았다. 혼자 쓰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그렇게 스스로가 멋있을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도 없는 걸 잘도 자랑스럽게 썼다며 땅을 치기 일쑤였다. 그런 날과 저런 날이 지나 한 10년 넘게 4000편 정도의 잡다한 걸 쓰고 보니 이미 습관적으로 쓰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유난히 까탈스럽고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때면 "요즘 글 안 써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 정도로 뭔가를 풀어내기 위해 쓰기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져서 자꾸 곱씹게 된다. 쓰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걸까, 쓰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걸까, 둘 다거나 둘 다 아닌 걸까. 이게 또 궁금해져서 쓰게 되는 게 습관적으로 쓰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다.


 셋은 생각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자주 쓴 말인데,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주변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까지,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면 너무 피곤하지 않으냐? 는 질문도 자주 들었다. 지금도 듣고 있고, 앞으로도 듣게 되겠지.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습관적으로 나온다.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짧지 않은 대답이. 습관적으로 무언가에 대해 거의 늘 생각을 하는데 이게 정말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게 더 피곤할 정도랄까. 일단 생각을 해본 후에 이걸 얘기하거나 물어보는 게 나을지를 생각하는 게 편하다. 우리는 모르는 것, 미지를 특히 두려워하기 마련이기에 그런 두려움(때론 공포)을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게 안심이 된달까. 그렇다고 그렇게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거의 생각할 수 있는,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헤아려 보는 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뇌 용량도 갖고 있지 못하고, 기본적으로 허술한 편이라 철저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구멍이 많다. 다행스러운 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져도 크게 당황하거나 자책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모든 걸 생각할 수는 없고, 자연히 예상하지 못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질 확률이 예상 범위 안에서 거의 모든 일이 돌아갈 확률보다 높다고 인정하고 살기에 그렇다. 중요한 건 습관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생각의 방향이나 깊이, 의도까지 습관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거다.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는 거지 생각하는 방식이 습관적인 건 아니니까. 


 이미 첫 줄에서부터 '피곤하다'는 예감을 느낀 감이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느닷없지만 여기까지만 쓴다. 아쉬우면(정말? 그럴 리가!) 요청하면 이어서 써보기로 하고.


 매일 쓰려는 시도 중이다. 사실 최근 1년은 습관적으로 읽지도, 쓰지도, 생각하지도 않아서 습관이라는 말을 쓰기 망설여질 지경이다. 그래서 당장 읽는 건 그렇다고 하고, 다시 쓰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습관적으로 써보는 중이다. 1일 1편, 분량 무관, 주제 자유, 뭐 그런 조건으로 가볍게 몸을 풀어보는 거랄까. 


 삶은 예측 가능해 보이면서, 가장 예측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순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벌여준다. 덕분에 무질서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따라서 혼란에 빠지게 되고, 리듬이나 규칙 같은 건 의미를 잃는다. 그 혼란을 수습하고 조금은 나다워졌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돌리려고 하면 또 다른 일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는 식의 나날이랄까. 이렇게 적었지만 그게 싫다거나 불운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흥미롭고, 만족스럽고, 기분 좋고, 사랑스러운 날이 더 많으니까.  

 과거와는 분명 다른 의미에서 지금은 습관적으로 써보려고 한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사는 나이기에 다른 식의 쓰는 습관, 읽는 습관,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해졌으므로.


 이래 놓고, 마음으로 미루고 있는 쓰기로 한 일이 자꾸 재촉한다. 이제 마감이라고, 2일 안에 쓰지 않으면 배신(배반)이라고. 그런데 그런 장르는 습관적으로 써보지 않았다는 변명이 통하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써보겠습니다. 


 - 이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의 한 예시. 뒤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글을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 그것이 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의 기록_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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