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눈에 들어온 신발을 보고, 겨울이구나 한다.
지난 저녁에 있던 일이다. 문득 바닥을 시선을 주었다가 저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과 같은 순간이 처음도 아니었을 텐데 유난히 그 순간, 그 장면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처음 떠올린 건 '사람마다 다 다른 신발을 신었구나'다. 그다음에는 '신발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을 닮았겠구나'다. 그다음에는 '닮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면모를 반영하겠구나'로 바뀌었다. 그러다 한 순간 알아차렸다.
'나만 여름 신발을 신었구나'.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새삼스레 얘기할 일도 아니다. 아마도 지난겨울에도 그랬을 거고, 그 전에도 다르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대수롭지 않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어쩌면 늘 그래 왔기에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었다.
"나는 참, 철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런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듯 지냈을 사실 얘기다.
예전에 쓴 글에 이렇게 적은 일이 있다.
'철든다는 건 녹이 슬기 시작하는 거'라고.
그때 쓴 글에 빗대어 말하면 철 모르고 사는 이유는 녹슬지 않기 위해서, 녹슬기 싫어서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변명 같지만 실제로도 지금까지 녹슬어 멈춰버리거나 고장 나지 않고 잘 굴러오고 있는 걸 보면 아주 틀린 말, 억지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철든다. 녹슨다. 틀에 갇힌다. 굳는다. 움직이지 못한다. 죽는다.
한 겨울이 되었어도 한 여름 신발을 신는다는 건 사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름 신발을 신은 게 문제가 될 정도로 오래 서 있거나 오래 걷지 않는 생홀 환경의 반영, 신발이 젖거나 미끄러질 수 있는 눈 혹은 비가 오지 않은 자연환경의 반영, 격식을 갖추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업무 형태, 방문 장소 근무 환경을 반영, 꾸미거나 멋 내지 않아도 되는 인간관계 환경의 반영, 무엇을 신든 불편하지 않으면 만족하는 내면 환경의 반영. 앞서 '하나의 면모를 반영'하는 신발이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나 다양하게 풀려나올 수도 있는 거다.
사실의 확인에 불과한 얘기다. 근무 환경은 자유롭고, 복식이나 신고 다니는 신발로 누군가의 지적이나 훈계를 들을 상황도 아니며, 발이 시릴 만큼 바깥 활동이 많지도 않고, 눈이나 비가 올 때 신는 신발은 또 달리 갖췄으니까. 다만 별 고민 없이 아무렇게나 꿰어 신어도 편안하므로 굳이 의식하는 일 없이 신고 다니다 오늘처럼 문득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 그 장면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는 핑계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꼭지 글을 남길 소재로 쓰이기도 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일상.
신발 덕분에 주말부터 추워질 거라는 예보가 더 실감 나고, 코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고작 일주일 뿐인 2021년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아주 드물게 계획이라는 낯설고 생소한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계획, 2022년에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게 될까.
겨울이다. 여름 신발 덕에 더욱 존재가 뚜렷해진 겨울, 점점 더 겨울다워질 겨울. 추운 겨울. 준비하기 좋은 계절 겨울. 겨울 다음에, 봄. 봄에는 꽃을 피워야지. 그러려면 꽃을 심어야지. 그런 선후도, 맥락도 없는 생각 그리고 생각들.
사람들의 신발과 내 신발을 보게 된 자리는 한 사람, 정확히는 두 사람이 계획하고 진행한 시간의 결실, 결과물을 두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 시간을 함께 하며 생각한 건,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시간, 과정을 거쳐왔구나 하는 인정, 감탄, 조금의 부러움, 혹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부끄러웠던 건 지난 몇 계절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유예하고, 미루고, 포기했던 일을 누군가는 조금 더 애쓰는 길을 택함으로써 해냈기 때문이다. 누가 하라고 시키거나,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하리라고 엄포를 놓은 것도 아닌데 괜스레 미안해지고 말았다.
한 겨울에 한 여름 신발을 신고 다니는 철없음, 어쩌면 무책임 혹은 무감각한 태도를 반영했을 그 모습이 괜히 마음에 거스러미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해내거나 해치우거나 해야지. 더 미루거나 더 피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테니. 뭉툭해진 연필을 깎듯, 오래 쌓인 핑계들을 털어내야겠다. 이번 기회에 따뜻한 신발도 하나 사고. 기왕이면 비나 눈이 와도 젖지 않을 녀석으로.
사람이 보기에 늘 같은 신발을 신은 듯한 고양이들도 사실 철마다 신을 갈아 신는다. 더 촘촘하고, 더 따뜻하고, 더 물이 잘 빠지는 외양은 비슷해도 기능은 확실한 것으로.
철이 들면 녹이 슬 수도 있다. 하지만 철이 든다는 건 더 단단해진다는 것, 지금 해야 할 일, 해내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올곧게 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결국 해가 되는가 득이 되는가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느냐에 달렸다는 식상한 얘기.
그나저나 녹이 슬기는 하나보다. 벌써 몸 한 구석이 말썽을 일으키더니 말을 안 듣는 걸 보면. 잘 달래서 움직여 봐야지, 올해가 가기 전, 오래 모르고 살던 계획 하나를 세워내야지. 그럼 철이 좀 더 들어 보이려나.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