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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12. 2022

소도시의 인연은 돌고 돌아온다

공백은 채워지기 마련이다

작은 도시에 책방을 내고 작은 도시에 산다. 

2019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4년 차. 

흥미진진 공주라는 시가 내걸어둔 슬로건의 의미와는 다르겠지만 공주시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나는 어쩌다 공주에 살며 하루, 한 주를 흥미진진하다 느끼게 됐을까. 

잠시 대답을 미뤄두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거의 모든 환경에 적응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 놀라운 능력에는 부작용도 있어서 일상은 간단히 별 것 아닌 것이 되기 마련이고, 더 이상 즐거움이나 자극이 되지 못하고 질려버리게 한다. 많은 사람이 단조로운 삶을 못 견뎌하기에 작은 도시는 더 작아져가고, 소멸 위기는 가속한다. 작은 도시 공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노력한다고 하지만 소멸 위기 해소, 인구 회복의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공주에서의 삶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제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요즘의 나는 지금의 삶에 상당히 적응해 버렸던 모양이다. 어쩌다 공주에 살게 됐는지, 그때 느꼈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 거의 잊어버리고 지냈으니까. 

 새삼 깨닫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지난해 알게 된 지인이 공주에 잠시 들렀다가, 공주에 잠깐 머물다가, 공주에서 얼마간 일하다가, 자기의 공간을 준비한다며 계약을 염두에 둔 곳을 함께 봐달라는 얘기가 시작이었으므로. 마치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일치가 있어야 일어날 법한 범상치 않은 일의 전조였던 그 사건.


 지인과 함께 찾아간 건물은 무척 익숙한 곳이었다. 2019년 1월, 갑작스럽게 공주살이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얻었던 월세방, 그 자리였으니까. 덕분에 함께 공간을 둘러보며 당시 살아보며 느꼈던 점들을 전할 수 있었다. 며칠 생각해보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이었던가, 그다음 날이었던가 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공간이 임대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처음 공주에 와서 사랑방처럼 늘 머물던 반죽동 247 카페의 황사장이라는 점도 놀랄만했다. 내게 공주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던 공간 축이 반죽동 247이었고 정착하면서, 정착한 이후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사람과 공간이 반죽동 247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다시 떠올리고 되짚어보게 만든 계기는 대전 KBS의 한 프로그램 촬영이다. 우연의 일치로 지난해에 가가책방을 소개한 프로그램이기도 해서 거의 1년 만에 프로그램 리포터와도 재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 혼자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마무리 멘트를 하면서 잠시 추억에 젖어버렸다. 나 혼자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새삼 반죽동 247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워주는 사람의 소중함과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는 이를 향한 응원과 기대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게 공주가 흥미진진한 건 공주에서 만난 사람들, 새로 맺은 인연들 덕분이다. 별 볼 일 없어서, 지루해서, 답답해서, 사람들은 소도시를 떠난다. 사실 그렇게 떠나간 대도시에서 더 많은 별 볼 일이나 지루할 줄 모르는 나날이나, 답답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일상을 누리기는 마찬가지로 요원하지만 적어도 떠났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도 한다. 


 다시 떠올리려고 하니 잘 떠오르지 않지만 공주와 같은 소도시에서 가장 귀한 건 결국 사람이다. 인구 1명의 사람이 아니라 일상과 웃음,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삶을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들이 만들고 꾸려가는 공간은 특별하고 또 애틋해서 아껴주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들, 가가책방을 처음 방송에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던 '기여를 낳는 애착들'이 나의 공주를 흥미진진하게 하고 살맛 나게 한다.


 사람이 사람과 멀어지는 게 당연한 시대다.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고 멀리해야 해서 더 간절하게 느끼는 것 역시 당연한 시대이기도 하다. 

 멀어져서 생긴 공백, 떠나가서 만들어진 공백들로 가득한 소도시. 그런 현실을 슬퍼할 수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동안 공백은 채워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공백을 채워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인연은 돌고 돌아서 흥미진진하게 하고, 충분하다고 느끼게 한다. 


 애착이 기여를 낳는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자신과 우리 삶에 느끼는 애착이 우리와 자기 삶에 기여할 무언가를 반드시 만들어낼 것이다. 자, 또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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