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 바로하기.
오전 일정을 마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잔뜩 여유를 부리다 오후 일정을 20분 앞두고 시작하는 글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언가를 쓰는 행위에 어떤 경건함, 특별한 의미를 덧씌우는 날이 늘었다. 이 글은 이래서 지금 쓸 수 없고, 저 글은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하니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아니고 하는 식이다. 하루가 이틀이 되기는 어렵더니 일주일이 한 달이 되는 건 너무 간단하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여섯 달이 되는 일도 생겼다. 쓰는 사람이 되는데 10년 넘는 시간을 들였는데 쓰는 사람의 정체성, 쓰는 사람의 쓰기를 잃어버리기는 한 계절이면 충분했다.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었지만 쓰는 사람이 된 게 맞는지, 쓰고 있는 게 맞는지, 잘 쓰고 있는건지 확신하기에는 10년도 모자랐다. 매일 써도 매일 쓸 말이 맴돌던 머릿속이 단순해진 지금이 낯설지 않다. 자극을 좋아하는 인간,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뇌는 쓰는 일이 자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편안하게,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 밋밋해지고 단순해지는 생각에 간단히 길들여졌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제는 흔하게 들어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이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대작을 쓰는 게 아니라도, 완성된 한 편의 작품을 쓰는 게 아니라도 단 몇 단어, 몇 줄의 메모라도 꾸준히, 자주 하는 게 중요하다. 노력도 노력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법. 모든 일은 들인 시간, 노력만큼 결과를 내놓는다.
쓰는 사람의 쓰기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다. 멀리 돌아온 기분이지만 틈 날 때 쓰고, 틈 내서 적는 일을 꾸준히 해내려고 한다. 얼마 전 한참이나 쓰기를 쉬다 문득 예전의 쓰기를 돌아보는데 이런 생각이 났다.
"나는 그동안 소진하고 소모하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닐까."
글을 쓰면 쓴 글이 남아서 무언가 쌓일 거라고 믿었다. 정말 그랬을까 하는 회의를 처음 느꼈다. 그 순간의 감정, 생각, 복잡한 마음, 이야기를 빨리, 어디에라도 써서 없애야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소한 물음.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무거움을 한참이나 마음에 담고 다녔다. 어쩌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동안 앓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재활의 시간.
쓰다가 잃어버린 것과, 쓰기를 잃어버린 마음과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한, 글과 재회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