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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an 25. 2023

한파 ; 영하의 추억

체감과 실재 그리고 기억 사이의 격차에 대하여 

 상점 수도가 얼었다. 전국을 꽁꽁 얼렸다는 한파가 만든 작은 여파를 경험하고 있다. 심하게 얼지는 않았는지 난방을 틀고 두 시간쯤 지나니 열어둔 수도에서 물이 쏟아졌다. 나에게는 사소한 일,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일상 혹은 일생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한파가 떠올리게 한 예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친구들에게나 지인에게 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종종 "너, 진짜 나이가 몇이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고 자라 어린 시절 십여 년을 보낸 지역이 그렇게 외진 시골이 아니었음에도 또래의 경험에 비해 그 낡음이 더 깊은 탓이다. 예를 들자면 어린 시절 시내의 둑을 보수하던 어른이 마차에 돌을 실어 오가며 냇가의 둑을 쌓는 걸 봤다거나(기억 속에서는 심지어 백마가 끄는 마차다) 워낭을 달고 보습을 지고 밭이며 논을 갈던 소를 실제로 몰아봤다거나(정말 이웃집에 가서 훈련된 소를 빌려왔다) 일요일에는 마을 회관에서 청소하는 날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길을 쓸고 청소했다는 식의 기억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10년에서 20년의 나이를 더해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절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웠던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일기 예보나 뉴스는 수십 년 만의 한파니 뭐니 해서 과거 기억 속의 그날보다 오늘이 더 추웠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순위를 매겨 언제가 더 추웠고 언제가 더 더웠는지 증명하기도 한다. 그 데이터를 부정할 수 있는 증거가 내게는 없으므로 과거, 기억 속의 겨울이 더 추웠다고 느끼고 기억하는 이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떠올려본다. 왜 과거의 겨울, 기억 속의 그 겨울들이 더 추웠을까.


 어제나 오늘이나 거세지는 않아도 바람이 쉬지는 않아서 바람을 마주하고 걸을 때면 열어뒀던 패딩의 지퍼를 닫아야 했다. 설을 전후한 날에는 늘 바람이 불었던 것만 같다. 그래선지 옛날 명절 뉴스의 오프닝에 종종 등장하던 연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날은 차가워도 볕은 따뜻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오늘 같은 날이면 높게 쌓아둔 짚더미(짚을 누려두었다고 해서 집누리라고 불렀다) 남쪽에 숨어 연을 날리곤 했다. 해가 지난 달력과 동네 대나무숲에서 끊어온 대나무를 깎은 댓살로 직접 연을 만들었는데 핵심은 균형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하는 길고 긴 꼬리였다. 보통 신문지를 잘라서 연꼬리를 만드는데 연이 하늘로 오르기 전에 장애물에 걸려 끊기는 일이 잦았고 무사히 하늘에 띄운 후라도 바람이 거세면 쉽게 끊어지곤 했기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물을 채워둔 논이 얼면 그 위에서 미끄럼을 탔고, 눈이 내리면 길을 매끄러운 썰매장으로 바꿔버리곤 했다. 어른들은 차가 다녀야 할 길을 얼려놨다고 혼을 냈지만 기죽지 않고 눈만 오면 같은 일을 반복했다. 


 시골집이란 터가 아무리 넓어도 실내는 작기 마련이고 그때는 아직 책 읽는 취미가 생기기 전이었으며 몇몇 친구들이 갖고 있던 레고니 과학상자니 하는 것도 내겐 없었기에 늘 밖으로 나돌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비가 오거나 어지간히 궂은 날씨가 아니면 늘 밖에서 놀 곳을 찾고 놀거리를 만들었다. 덕분에 여름에는 까맣게 탔고 겨울에는 늘 손끝이 얼다 녹다 하면서 사소한 동상을 달고 살았다. 귓불이며 귓바퀴가 빨갛게 얼어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얼음이 박혔다며 추울 때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걱정 섞인 핀잔을 늘어놓으셨다. 그나마 바지나 겉옷이 젖지 않고 들어오면 다행인 나날이었다. 쇠붙이를 만지면 손에 묻은 물기가 얼어 자석에 쇠가 붙듯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일도 많았다. 그래도 꿋꿋이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놀았다. 불 땐 아궁이의 잔불과 숱에 감자며 고구마를 굽는 건 부수적인,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춥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좋았다.


 과거의 겨울이 유난히 춥게 기억되는 건 밖에서 몇 시간이고 뛰고 뒹굴며 놀았던 경험이 크다. 놀다 보면 젖고, 젖으면 더 추워지는 건 당연한 일. 그러고도 집 안으로 후퇴하지 않으니 언 손이 녹으면서 손끝이며 귓불이 늘 간질간질한 것도 자연스럽다. 지금처럼 롱패딩이 흔하지도 않았고, 핫팩이 뭔지도 몰랐다. 그나마 오리털 파카를 입으면 든든했고 바람이 숭숭 통하고 물이 스미는 털장갑은 금세 끼나마나 해졌다. 물을 데워서 씻었고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 얼어서 비누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추웠구나. 거의 모든 걸 밖에서 했으니 추울 수밖에. 기침감기를 늘 달고 살아서 사흘에 한 번씩 시내 병원에 다니면서도 밖에서 놀았던 걸 생각하면 무모했다고도 하겠다. 


 이 모든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는 과거, 기억, 추억이 됐다. 사람은 과거를 더 가혹하게, 엄혹하게, 크고 인상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오늘보다 덜 추웠을 그날들을 더 춥게 느끼고 기억하는 지금의 나처럼. 그럼에도 그 과거가 괴로움이나 비참함이 되지 않는 건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따뜻한 자리에 앉아 얼마쯤 잊어버려서 오히려 훈훈한 마음으로 그날을 떠올리며 웃고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 현관 밖을 나서며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찬 겨울의 공기 냄새를 떠올렸다. 쇠붙이를 붙들면 착 달라붙던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밥알을 으깨어 댓살을 해 지난 달력에 붙이고, 불쏘시개로 쌓아둔 신문지를 잘라 만든 꼬리를 달아 날리던 연이 그리워졌다. 


 볕이 좋지만 지금 바깥은 영하 12도. 오늘이 추운 건 다만 더는 어리지 않아서, 다르게 말하면 나이를 조금 더 먹은 탓, 그 외에는 없다. 체감과 실재, 기억 사이의 격차가 이렇게 해서 생기고 이토록 거대하다. 


학교 담장 옆에 누군가 남긴 '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철 지난 인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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