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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an 28. 2023

다시, 공주에서 작은 책방을 합니다.

이방인으로 지역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에 대하여.

눈 내리는 가가책방_하얀 것은 눈이오.

2023년 1월, 공주 생활 만 4년이 됐다. 

가가책방도 가오픈 후 3년 6개월을 채웠다. 

3년을 존속하기 어렵다는 세계에서 평균 이상 살아남았다는 걸로도 뿌듯한데 아직 조금 더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음이 늘 감사하다.  이번 기회에 좀 거창하게 포부를 밝혀보자면 세상 어딘가에 한 곳은 있으면 좋을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부터는 종종 지역에서 4년을 살며 3년 반이라는 시간을 '조금 이상한 책방'을 운영하며 보낸 한 사람의 이야기를 중구난방, 떠오르는 주제가 있을 때마다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쓸 이야기는 '책방을 하는 마음'에 대한 거다. 


 지역에서 작은 책방, 흔히 독립서점으로 통칭하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지역도 지역 나름이라 저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인구 10만 수준의 공주에서의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라는 걸 참고로 읽어주었으면 싶다.


 가가책방의 기이한 운영방식(이것은 서점인가 서점이 아닌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과 현재 지향하는 가치, 방향성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의 마음이 만든 결과이긴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판단할 것이므로 그에 대한 가치판단, 합리성을 재단하기보다 '이런 마음도 있겠구나'하며 봐주길 부탁하며 시작한다.


 가가책방을 운영하며 공주에서 살고 있는 내 마음을 한 줄로 표현하면 '방패 없이 전장에 나선 기사'의 마음이다. 현대의 첨단 총화기를 다루는 군인이 아니라 기사인 이유는 스스로도 시대착오적인 마음을 품고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명령'이 아니라 '명예'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종종 이러저러한 사람이 혹은 저러 이러한 이유로 책방을 한다고 하면 '책방 혹은 서점이 우습냐'며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누구도 책방이 만만하고 우스워서 시작하려고 마음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만만하고 우습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더라도 그 마음가짐이 변할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면 오래가지 않아 그가 운영하는 공간은 더 이상 책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게 될 테니까 결국 마찬가지다. 책방을 한두 달이 아닌 몇 년씩 운영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그 나름의 결심, 소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명예'가 달린 일이라는 증명일 것이고 다른 사람의 명예에 간섭하고 정의할 수 있는 타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사라는 존재가 썩 적절하지 않나.


 방패가 없다는 건 크게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삶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 생계의 위협 막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의 독자와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거의 모든 지역이 절대적인 인구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그 인구 중 독서인구는 더욱더 적을 테니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두 번째는 방패라는 가림막이 없는데서 오는 적나라함이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책방에 사람이 얼마나 드나드는지 아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은 게 지역사회다. 대략 얼마쯤 버는지, 도대체 유지는 되는지 몇 번의 질문으로 간단히 간파되며 직접 묻지 않아도 몇 사람을 거치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지역 사회에서는 숨을 곳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 


방패 없이 전장에 나선 기사의 마음이란 거기서 기인한다. 숨을 곳도 숨을 수도 없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열고, 운영을 이어간다는 거다. 단순히 낭만이나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생계와 생활이라는 현장에서의 생존을 늘 궁리하는 현실 속 인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빵만으로 살 수 없듯 꿈만으로도 살 수 없다. 그 현실은 이곳에서도 책방 운영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공주 원도심에는 제민천이라는 시내가 흐른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물고기와 오리 가족과 백로가 한가롭게 노닐기도 한다. 백로는 긴 다리로 꼿꼿이 서서 수면 아래를 응시하고 오리는 풀뿌리를 바쁘게 헤집는다. 둘 중 누가 더 마음에 드는가 물으면 나는 당당히 오리라고 말하려고 한다. 백로는 다리도 길고 뭔가 품위 있고 멋져 보여서 종종 감탄하게 되기는 하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다. 반면 오리는 뒤뚱거리고 버둥거리고 먹을 때 뭔가 품위 없어 보이지만 물이 깊거나 얕거나 잘 발달한 물갈퀴로 헤엄치며 먹이활동을 할 수 있어 생존에 더 유리한 면모가 있다. 그리고 오리는 제민천을 터전 삼아 사는 텃새다. 제민천에서 구애하고 산란하고 부화하고 성장하여 독립한다. 지나는 사람들이 늘 지켜보고 때로 둥지의 위치마저 들키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이런 모습이 방패 없이 전장에 나선 기사의 모습에 겹쳐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오늘도 오리의 마음으로 제민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가가책방과 가가상점을 지키고 앉아있다. 다 적을 수 없지만 대략 그런 마음이다. 


책방처럼 늘 오리도 우리 곁에_제민천의 사이좋은 두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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