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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가가책방 Dec 22. 2022

소모하는 글쓰기는 그만하자.

사라지는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글을.

한창 글을 쓰던 날을 오래 글을 쓰지 않게 되었던 날에 돌아본 일이 있다. 습관처럼, 숨 쉬는 것처럼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지 않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오늘 다시 시작해야지, 내일부터는 꼭 써야지 했더란다. 그렇게 다짐하고도 다시 쓰지 않고 버티기를 한동안,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쓰고 싶어서 쓴다고 생각했으나,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마음에서 치우기 위해 쓰기를 이용하고 있었구나."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써서 치우고 지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글이 적지 않았음을 아마 거의 처음으로 인지하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순수하게 쓰고 싶은 걸 쓴다, 기록을 위한 글쓰기다라고 말하곤 했지만 쓴 걸 다시 읽거나 읽고 되새기는 일은 드물었다.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쓰기에 들인 시간은 얼마나 의미가 있던 걸까. 조금 허탈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변명하는 게 말로든 글로든 싫어서 어떤 해명이나 설명을 적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책, 사람들의 면모, 행동들을 비판하거나 꼬집는 글은 많았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됐을까.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막고 보기 싫은 글에는 눈을 돌리는 게 인지상정이란 걸 알면서 무슨 사명감에 젖어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추천하고 권하는 이야기, 좋은 면모, 배울 점, 새로 발견한 사실들을 전해주는 글이 글로든 인간으로서든 더 유익했을 텐데.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글을 쓸 테다"라며 덤벼들듯, 물어뜯듯 써 내린 글이 무엇을 낳았는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며 내 글을 읽지 않고 호응하지 않는 건 내 말이 너무 옳은 말이라, 고리타분할 정도로 바른 소리라 그런 것이라며 세상을 비난하던 날도 있었다. 실제 비난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의미가 담긴 원망을 품었던 적이 있다. 쓰지 않았다면, 쓰는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면 혀 한 번 차고 그쳤을 순간의 불편함이 수고를 들인 결과 글로 박제되어 공개되고 오해받거나 역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되었던 거다. 좋은 말을 하며 웃는 얼굴로 살아도 부족한 시간을 예상하지 못했던 불쾌함과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써야 했던 건 정말 큰 손해다. 감정과 글감을 소모하기 위해 쓴 글쓰기는 이득이 적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썼던 경험 덕에 그런 글쓰기는 이득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쓰기를 쉬었으나 다시 쓰기 시작함으로써 이전의 글쓰기를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물론 앞으로도 비판하는 글을 쓸 날이 있을 거고, 잘못된 상황을 공유하고 분석하고 견해를 내놓는 일도 계속할 거다. 마음속 불만을 글감 삼아 시작하고 넋두리처럼 끝맺는 글도 쓸 거다. 그러나 소모시키기 위한 글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다.

소모가 아닌 해소, 망각이 아닌 승화를 위해.

조금 더 쓸모 있는 글을 고민해도 좋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