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말하면 일어나는 일들
하루하루, 한 순간순간을 살 때는 다툴 일도, 마음 상할 일도, 속상할 일도 참 많다고 느낀다. 그러다 한 밤 잠들기 전이나 다음 날이 되면 그날 있던 나쁜 일, 전날 마음 상했던 일들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그래도 좀 잘 사는 것 같고,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산다고 느낀다. 일관성이 없다거나 모순된다며 골몰하기보다 '나는 내 삶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고,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라는 걸 거부감이나 의구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제는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인 듯도 하고 넓은 사람인 듯도 해서 어떤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거나 영원히 이러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좋게는 임기응변이 늘었고 나쁘게는, 음,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하기 어려운 것과 설명하기 버거운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줄었다. 향상심과도 맥이 통하는데 더 읽고자 하는 마음이 줄었고 새로 알아가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늘어나는 괴로움도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는다.
나는 조금은 식물처럼, 다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다. 누군가 나를 베어내더라도 잎이나 꽃만 떼어내기를,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아내지 말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러고 나니 조금 더 삶이 수월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굳이 별 일을 하나쯤 떠올려보면 어제 운전하며 겪은 일 하나가 있다.
회전 교차로에서 뒷자리 번호가 1020인 소형차가 도로를 달리다 말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봤다. 나쁜 사람 역할을 자처하는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회전교차로로 돌아오는 차량을 향해 경적을 길게 울렸다. 횡단보도를 차로 건널 정도의 생각을 하는 운전자가 그 정도 경적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서행하다 왼쪽으로 진입해 창문을 여는 상대방을 향해 마주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말했다.
"사장님, 왜 경적을 울리신 거예요."
의외로 예의 바르게 말하는 솜씨와 아주 작은 회사지만 일단 사장을 하고 있다는 것마저 간파한 점에 살짝 놀라면서 대답해 주었다.
"횡단보도에서 유턴하셨잖아요."
누구나 이유가 있듯 상대방도 이유가 있던 모양이다.
"저도 급해서 그랬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경적을 울려요."
급한 것 치고는 창문을 열고 문답을 한참이나 하고 있는 게 좀 우습지만 그래도 급하다고 하니 말해주었다.
"그럼, 어서 가세요."
그러나 상대방은 다시 양보하는 거였다.
"먼저 가세요."
그러면서 그는 뒤에 차가 온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출발했다.
방향이 같아서 따라가게 됐는데 또다시 등장한 회전교차로에서 바깥쪽으로 빠지더니 조금 머뭇 거리듯 하기에 지나쳐 가던 길을 갔다. 그 후로 약 2킬로미터 동선이 겹쳤는데 그는 내내 천천히, 안전거리까지 두며 조심히 따라왔다. 나의 뒤를.
별로 보복운전이나 뭘 생각했다기보다 직전에 횡단보도를 건널 정도로 급한 일이 없어진 것 같았다.
별 일 아니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
오늘 문득 어제 그 사람이 다시 떠올랐는데 '왜 굳이 나는 그에게 경적을 울렸는가'하는 물음과 '경적을 울려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그의 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사정이 다급했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 나였어도 정말 급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거다. 다행히 나에겐 아직까지 운전하며 횡단보도를 차로 건널 정도로 급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를 향해 강력한 비난의 의미가 담긴 경적을 울릴 수 있었지만 언젠가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게 아닐까.
일단 내놓는 답은 '아니다'다. 나는 앞으로도 급한 벌어지더라도 그러지 않으려고 할 테니.
사실 횡단보도에서 100미터만 더 가면 유턴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200미터 앞에 있다고 해도 돌아오는 게 맞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래서 아무 사고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잖아"라는 말을 싫어한다. 지킬 것을 지키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지키지 않음으로써 어느 날에는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툼이 될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당신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있으며, 그 행동에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비난'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한다. 이번에 비난으로 끝난 게 다행이고 다음에는 비극이 될 수 있음을, 별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걸려 넘어지는 거다.
별 일 없이 사는데, 내가 별 일을 다 만든다.
그래서 별 일이 다 있다.
조금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서 이야기한 횡단보도를 건넌 소형차 운전자처럼 개인적 이유를 들어 많은 걸 미루고 유예하는 중이다. 그래서 별 일이 없는데, 그래서 별 일을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바쁨, 마음 급함은 상대적인 것이었으나 나의 그렇게 통행해서는 안 됨은 절대적인 것이라 그렇게 말하면 다툼이 됐다.
그런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