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으로 써보기 초안
제목 : 여러분 계속 써봅시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어서 10년 넘게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느끼는 막막함이 개요를 짜고 글로 전하려는 핵심을 한두 줄로 정리해 보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백지로 시작하고 마는데 한 십 분이나 이십 분을 멍하니 머릿속을 뒤지다 그만두는 일을 거듭하는 날이 며칠 이어지면 이번에야말로 개요를 짜봐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가도 막상 다시 글을 쓰려고 앉으면 개요를 궁리하기보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고민부터 시작하는 통에 결심이 다 뭔가 싶어지면서도 오늘은 아니지만 어느 날에는 자연스럽게 개요를 떠올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를 하고 마는데 이 기대가 마냥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과거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계속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되더라는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어서 내심 믿고 있는 구석이 되어버렸는지 결국 오늘도 백지로 시작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계획을 좀 해서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아서 지금도 글을 쓰면서도 내내 개요를 어떻게 짤지 핵심 메시지를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글쓰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조금 한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었구나 깨닫고 나니 소위 자괴감이 몰려오는 듯도 해 이게 다 뭔가 하는 허탈함에 한숨을 크게 내쉬어보는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보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머릿속도 맑아지는 기분이라 글쓰기 수업 때 사람들에게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쓰기 시작하면 시간이 모자랄 듯한데’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떠올랐을 때 개요든 첫 문장이든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든지를 정리 해둔다면 나중에라도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도 더하자는 결심이 서고 결국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하면 ‘나부터 다시 천천히 글을 써보면서 경험과 생각을 일치시켜 나가는 작업을 한 번 더 해봐야 하는 거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을 얻은 터라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개요든 구성이든 정리든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손과 몸과 머리를 모두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이고 확실해지는 거구나 느끼면서 백지를 채우겠다는 생각보다 좀처럼 글이 되어 나오려 하지 않는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어서 어느 방향으로 이끌며 마지막에는 어디로 나갈 건지 흐름에 집중해야 조금이나마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돕는다는 경험적 사실이 글 쓰는 이가 채워야 할 마음가짐의 첫 단추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결국 수업이든 동아리든 글쓰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넬 이야기의 끝은 ‘여러분 계속해보십시오’가 될 거라는 걸 예감하면서 보통의 글을 쓰려는 우리는 거의 훈련되지 않은,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이므로 어려움을 느끼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려움을 느꼈기에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향상심도 느낄 수 있고 향상심을 느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나가는 단서를 모아간다는 확신도 생길 거고 그렇게 모인 단서와 커진 확신이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기록하는 걸 넘어 내일 우리 모습도 뚜렷이 그려낼 거라 믿게 되었다.
- 2023. 05. 24. 13: 45-14:35
정말 날 것의 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