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길에 사는 감영길입니다만_프롤로그
다정하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오해가 적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되도록 사실을, 할 수 있는 최대한 단호하거나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다행히 오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서 전보다 조금 더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요. 혼자 지내던 날에는 그런 단호하고 분명한 말, 태도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태도를 두고 무례하다거나 당돌하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 또한 태도를 관철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별 일 없이,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어른이거나 아이이거나, 가족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시비를 가리거나 잘잘못을 따질 때 어느 쪽을 더 존중하고 편들지 않는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능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요. 안으로 굽어야 하는 팔이 바깥으로 굽는 것처럼 느낄 때 사람들은 화를 냈습니다. 다툼을 시작한 상대보다 자신을 편들지 않는, 잘못한 자신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더 미웠던 거겠죠. 미움받지 않기 위해 한쪽의 이야기를 더 신뢰하고 같은 편에 서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곤란해지지 않았지만 마음속 나는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언젠가, 지금이 아닌 어느 날에 오늘 같은 편에 선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그때 듣기 싫은 소리, 입에 쓴 말을 건네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평화와 안녕을 누려야 할 누군가가 나와 우리의 행동, 말, 생각으로 어느 날 크고 작은 불행과 마주해야 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향할 것인가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정할 수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마음이 여리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만화, 영화, 누구의 이야기에 툭하면 눈물 흘리기가 일상이었죠. 공개적인 울보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눈에 먼지라도 들어간 것처럼, 눈이 피곤해 감았다 뜨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소리 없이 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게 열세 살 이후로 혼자인 날이 무척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확실히 다정했겠죠. 세상의 거의 모든 단어에 마음을 둘만큼 다정했다고 조금 과장 섞인 표현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오히려 열세 살 이후로 눈물 흘리는 날은 줄어들었습니다. 조금 더 단단하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고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하던 날이 하루하루 쌓여갔거든요.
인간은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죠. 조금 정확히는 혼자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홀로 살아간다고 하는 산의 왕 호랑이도 아니고 사람이라면 외로워서라도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무엇에든 기대어 산다고 하는데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기대는 게 마음에도 생활에도 더 알맞고 좋은 거죠. 그럼에도 누구나 인생에서 무모한 다짐을 하는 시기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아마 지금이라면 중 2병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당 할 텐데 그즈음에 혼자서도 살아가야 한다거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던 모양입니다. 다정하지 않기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다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정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분투하며 견디는 시간을 보낸 도시를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로 불쑥 옮겨오는 나답지 않은 충동을 실천에 옮기게 된 배경에는요. 새로운 도시, 낯선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되살아날지도 모르는 다정한 나를 꿈꾸며. 우연이겠지만 새로 머물게 된 길의 이름이 익숙하고 낯익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감영길에 삽니다. 제 이름은 감영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