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높이지 않고 아이 키우기

아빠의 작은 소망은 좋은 기억이 되기를

by 가가책방
KakaoTalk_20231019_124235268_01.jpg 쌀 놀이의 결과

또 아이를 한참 울렸다. 즐거운 쌀놀이의 결과가 아이에게는 비극적 이게도 눈물이었던 거다.

위험한 물건이나 장소가 아니라면 놀게 두는 편이다. 농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쌀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기에 이삭 하나 쌀 한 톨까지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잘 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쌀조차 놀이에 쓰도록 허용해 왔다. 오물이 묻거나 흙 등 이물질과 섞이거나 하지 않는 이상 조금 가지고 놀았다고 쌀을 먹는 데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는 주의라서다. 밟는다거나 깔고 앉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원칙은 규칙을 지키는 한 아이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놀 수 있다에서 시작한다. 30개월이 되기 전까지 아이의 놀이 규칙은 조금 더 느슨했다. 잘못해도 놀지 못하게 할 뿐 설명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지금도 그 방식이 옳았는가에 확신은 없다. 그저 다시 돌아가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가 쌀놀이 끝에 울게 된 여정을 돌아보고 오자.

아이는 쌀통에 작은 장난감 포클레인을 넣어 윙푹~ 하는 소리를 내며 놀이를 시작했다. 포클레인이 있으면 트럭은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 작은 트럭도 들어갔다. 이어서 불도저와 롤러를 현장에 합류시키더니 본격적으로 작업할 마음을 먹었는지 점점 큰 중장비 장난감을 쌀통 현장에 투입했다. 현장은 점점 넓어져서 쌀통 안에서 쌀통 뚜껑으로 넓어졌고 한두 알씩 쌀통 주변에 쌀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이지도 고의도 아닌 일이라 아이에게 말을 걸어 뭘 하고 있는 건지 묻거나 포클레인 삽이 작아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되도록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을 전한다. 약속도 하나 하는데 '놀이가 끝나면 떨어진 쌀은 스스로 통 안에 집어넣기'다. 아이는 쌀 하나로 20분 넘게 혼자 놀았다. 역할을 바꿔가며 포클레인이 되었다가 트럭이 되고 불도저였다가 롤러가 되어 길을 내고 쌀을 옮기기를 조용히 계속하는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통 안과 주변에서만 노는 게 지루해졌는지 아이는 쌀을 식탁에 옮기려고 했다. 이번에 쓴 건 작은 모래 놀이용 삽. 당연히 나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는 경고와 약속을 어기 말자는 부탁과 제자리로 가져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여러 차례 제지하고 설명하고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아이는 결국 고의로 쌀을 쏟고 흩트렸다. 쌀을 식탁 위에 쏟기 전에 웃음기 띈 얼굴로 아빠 눈치를 보며 이것은 건널 수 있는 강인가 아닌가 재보는 듯하더니 과감하게 쏟아낸 것이다. 결국 그 과감한 결단의 결과 눈물을 쏟게 되었지만.


설명이 구구절절한 편이다. 규칙을 정하고 어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설명한다. 규칙을 어길 듯 말 듯 한 상황에서 그 이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빠가 지금 하는 즐거운 놀이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을 경고한다.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보이면 더 엄한 목소리로 규칙과 약속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그러나 번번이 아이는 약속을 어기는 걸 택했고 큰 목소리로 단말마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아이는 눈물 흘리며 계속하겠다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몸부림치는 아이를 들어 거실로 옮긴 후 약속을 어겼다는 걸 한 번 더 이야기하고 더 이상 쌀을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선언한다. 지키지 않은 약속을 차례차례 열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잘못했음을 아는지 묻는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요즘 아이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이건 잘못한 거야라는 말에 "잘했어!!"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내 성격상 잘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왜 잘못인지 설명하는 말이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쌀을 쏟고 흩트린 결과 아이가 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이야기한다.

"쌀은 밥을 짓는 거야."

"네가 쌀로 밥 짓는 걸 도와주니까 알지?"

"쌀을 흘리면 쌀을 버려야 할 수 있어."

"쌀을 버리면 쌀이 없어지니까 밥을 할 수 없지."

"그럼 너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되는 거야."

40개월 아이가 이 말의 어디까지 이해하고 납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설명을 하고 하지 못하게 하는 걸 선택한다. 우는 틈틈이 콧물이 나왔다고 닦아달라며 칭얼대는데 큰 소리로 혼내고 화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상황에 왠지 웃음이 나는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아빠는 아이 입에서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이야기를 멈추었다. 눈물이 잦아들고 콧물을 다 닦아준 후에 질리지도 않고 아이에게 잘못한 일과 아빠가 화를 낸 이유를 설명한다. 그 후 한 번 더 약속을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쌀을 쏟거나 흩트리지 않고 놀기."

그렇게 30분 가까운 눈물 섞인 투쟁이 평화롭게 마무리된 것이 쌀놀이와 울음의 여정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아이를 제지하거나 훈육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그러나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큰 소리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아이의 의식을 깨우고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모르게 된다. 더 현명한 방법이 있을 테지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그 방법은 미지의 땅 어디에 있는 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왜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는가. 왜 아이의 이름을 단말마로, 비명처럼 부르는가. 그것은 얼마나 나쁜가.

스스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늘 던지며 고민을 거듭한다. 더 나은 사람도 좋고 더 나은 아빠도 좋지만 단지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언제까지나 상냥하게 부르고 싶어서.

현명한 육아 지침을 설파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 다르게 들린다. 결국 아이마다 최선의 육아법이 다르다는 것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아이만 다른 게 아니라 부모도 다 다르지 않은가. 최근 실감하는 건 아이가 쓰는 단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아이를 키우며 나 스스로의 자기 조절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만큼 빠르지만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닳거나 깎여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부분이 의미 있다.


아빠도 자란다. 아이가 먼 훗날 오늘날을 돌아보며 소리 지르는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며. 울고 웃는 육아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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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아서 좋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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