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천사였다가 악마였다가 한다
천사 같은 아이와 지옥 같은 육아는 동의어다.
낮은 출산율에 위기감이 커지면서 원인에 대한 많은 의견과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이만큼 투자하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물음이 있고, 이런 식이면 아이를 낳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는 의견은 늘 팽팽하게 맞서서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들의 논의와 문제 제기, 해결책 제시와 무관하게 우리는 아이를 낳았다. 여전히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하는 육아인지 확신하게 된 건 거의 없다. 아이가 웃을 때 기쁘고 아플 때 고통스러운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낼 뿐이다.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육아기를 쓰기 시작한 건 기쁜 일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불안과 고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부모가 육아를 힘들다고 말한다. 아주 옛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했던 광고 속 수험생이 있었다. 만약 그가 부모가 되었대도 그 역시 '육아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무렵 몇 년 먼저 부모가 된 한 아빠는 육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쁘고 행복한데 힘든 건 힘들다."
기쁘다는 건지 힘들다는 건지 결론이 모호해 기쁨과 행복이 힘겨움에 상쇄되지만 그래도 기쁜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힘겨움을 줄여주지 않으나 힘겨움이 기쁨을 빼앗아가지도 않는다는 대답이었다.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이 아이를 키우며 살에 닿고 마음에 박히는 공감이 됐다. 아이는 큰 기쁨과 큰 힘겨움을 모두 짊어지고 부모에게 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육아에는 동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쉬운 육아든 솔루션 육아든 문제 해결의 단서 제공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까이에 있어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 고민에 공감하고 급할 때 경험을 나눠줄 사람들, 동지라는 말보다 더 적합한 호칭이 없는 살아있는 사람들 말이다. 대가족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육아가 왜 힘드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육아가 힘든 건 부모의 생각, 태도, 방식이 미숙해서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 말에도 분명 깨닫는 바, 시도해 볼 방법, 옳은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적용해서 수월해진 경험도 있어서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육아가 힘들 수밖에 없는 사회와 생활의 변화의 영향을 외면하는 경향도 보이는 것이다. 만약 육아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 쉽다면 그 많은 부모들이 눈물 흘리고 전전긍긍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육아는 어렵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질문을 던져야 비로소 해결책에 다가갈 실마리가 보이는 것 아닐까. 어떤 인생 선배들은 '첫째라서 힘들다. 둘째는 조금 더 수월하고 셋째는 더 쉬워진다.'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 조언에는 그러한 경향이 있을 뿐 반드시 그렇다는 확신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이유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비하려고 마음먹어보지만 그 마음과 노력을 비웃듯 예상보다 조금 더 버거운 일이 자주, 너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좋다고 해서 효과를 보다가도 금세 또 다른 문제와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무심히 넘겼던 일이 다음에 우리에게 찾아들 수 있는 것이다. 예측할 수 있어도 막을 수 없는 불행,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그날 주어진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는 과정의 무수한 반복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두려움이나 불안이라고 하면 불의의 사고나 금쪽이 문제 같은 걸 걱정하는 줄 아는 이들도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아이를 키우며 처음 지옥 같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심장이 타들어가는 기분으로 일분일초를 보냈다.
여름이었다. 저녁까지 가벼운 기침을 하던 아이가 새벽 2시경 발작적인 기침과 함께 깨어났다. 아이는 숨 쉬기 어렵다는 듯 쌕쌕거리며 구토감 섞인 기침을 자꾸 했다. 안아 들면 나아질까 얼른 안아봤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뭐가 걸린 건가 싶어 등을 두드리고 입 안에 걸린 건 없는지 보려고 해도 발작적인 기침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력감, 불안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결말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희망적인 상황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증상을 적어 블로그니 의학 사이트를 찾아보고 가장 비슷해 보이는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염두에 두었을 때 119를 떠올렸다. 아내는 실제로 119를 부르려고 했다. 찬 공기가 도움이 된다는 조언과 네뷸라이저가 진정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있어 실행했다. 아이도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서 공포에 가까운 패닉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도 울부짖듯 부탁하는 부모의 호흡기치료를 거부했다. 울며 발작적인 기침을 계속하는 아이의 몸과 버리를 붙들고 간신히 네뷸라이저를 몇 분 하자 다행히 증세가 호전됐다. 열감이 있어 체온을 재보니 39도가 넘어 있었고, 해열제까지 먹이고 간신히 다시 잠든 아이 옆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깨어있으며 몇 번이고 온수마사지를 했다. 마치 살아 돌아온 아이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 어루만졌던 새벽이다.
이후에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차분히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가장 나쁜 결말을 상상했던 그 순간의 지옥이 끝난 걸까?
다시 여름이다. 잠들기 전부터 미열이 있던 아이가 자정을 넘길 무렵 깨어 재보니 39도가 넘는 고열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30분, 1시간을 지켜보며 체온을 다시 재기 반복했지만 열은 내리지 않고 40도를 향해 오르기만 했다. 옷을 벗기고 온수 마사지를 해보다 2시간을 다 못 채우고 해열제를 교차복용했다. 평소라면 교차복용이 효과를 보여서 열이 내릴만한데 열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아침이 됐다. 다시 두 시간 뒤에 한 번 더 교차복용을 했을 때도 1도 남짓 떨어져서 여전히 열이 높았다. 잠에서 깬 아이는 열이 남아있음에도 아주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병원에 가서도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울거나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상체온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밤이 되었고 아이가 기침을 더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다른 병원에 가자는 아내의 말에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얘기했다가 크게 다퉜다. 결국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아이는 폐렴 진단을 받았다. 첫 입원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의견의 충돌은 반드시 일어난다.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아이의 안위, 미래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걸려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날카롭고 세차게 서로를 상처 입히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또다시 여름이다. 이번에는 해열제가 들어간 약을 먹이고 그 사실을 깜빡 잊고 다른 해열제를 먹이면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고열이 아니라 저체온이 온 것이다. 고열은 고열대로 지옥이었는데 저체온은 더 지옥이었다. 38.5도에서 정상 범위인 37도를 지나 36도에 이르렀을 때 저체온 대처법을 검색해 수십 개의 게시물을 읽어봤다. 습관처럼 저체온이 일으킬 수 있는 의학적 부작용과 가장 불행한 미래를 떠올리며 벌써부터 슬프고 애통해했다. 보일러를 올리고 이불을 덮고 맨살을 닿게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쳐 잠들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 36도를 넘은 체온에 그렇게 감사하는 순간이 올 줄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내도 나도 119를 떠올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지독한 무력감에 오래 시달렸다. 아침이 되어 세상모르고 밝은 아이 모습에 오히려 울음이 터질 뻔한 날이었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라면 이런 일들을 한 번은 혹은 수시로 겪을 것이다. 천사같이 웃던 아이, 천사처럼 행복을 주던 아이가 부모의 실수 혹은 무지로 위험에 처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일분일초 사이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약해서, 이성적이지 못해서 그런 문제를 떠나 확신할 수 없는 그 상황, 최선을 다해도 상황을 호전시켜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슬픔이 스스로를 지옥에 머무는 듯 느끼게 한다. 다른 엄마, 아빠들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육아로 공감하는 동지이므로.
그래서 아이는 천사 같으면서 육아는 지옥일 수 있다. 그런 지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이를 혼내고 훈육하지만 그걸 모르는 아이에게 아빠는 천사였다가 악마였다가 하는 것이다. 늘 웃는 사람이고 싶은 아빠에게 혼내고 울리고 억울하게 하는 훈육자의 책임을 안긴다. 얼마나 잔혹한 운명인가.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아이, 나중에 잊고 말 못 하더라도 아이가 이 이야기를 보고 아주 조금이라도 기억해 주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흔한 육아 일기를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